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산골수필

[산골수필 1호] 몰래 다녀오고 싶은 영화제_조부용 씨네플레이 기자

몰래 다녀오고 싶은 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에 대한 기억

 

 

  

-2017 무주산골영화제 등나무 운동장 위로 펼쳐진 맑은 하늘-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직업이 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 기자로 일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나 사무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미세먼지로 가득한 요즘의 회색빛 하늘을 보고 있자면 더욱 답답해지곤 한다. 무주의 푸른 하늘과 신선한 피톤치드 향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산골 블로거 자격으로 참여했던 2016 무주산골영화제 기자회견-

 

무주산골영화제는 내게 여러모로 특별하다. 영화제와 첫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회를 맞이한 신생 영화제. 나는 영화제 홍보를 위해 뽑힌 산골 블로거자격으로 영화제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할 일 없는 백수였고 일상이 심심한 나머지 영화와 여행 관련 블로그를 열성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블로거로서 의욕 충만하게 무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무주에 도착하자마자 몇 번의 멘붕의 순간을 맞닥뜨려야 했다. 영화 시작 한참 전임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줄, 원활하지 못한 셔틀버스 시스템, 주변에 밥 먹을 식당도 몇 군데 없었다. 이곳저곳을 헤매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영화는 생각만큼 많이 보지 못했다. 따사로운 여름 햇빛 아래 하는 일없이 종종거리다가 영화 보는 건 포기하고 영화제의 메인 공간인 무주등나무운동장 파라솔 아래 앉았다. 그제야 피톤치드 향을 머금은 바람이 피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여느 영화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과 어우러진 조용한 활기가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다. 

 

-버스터 키튼 감독의 영화 <셜록2세>  with 신나는 섬 공연-

 

영화제의 진짜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부터다. 무주등나무운동장, 덕유산 자락에 있는 야외 대집회장에서는 공연과 영화 야외상영이 펼쳐진다. 하이라이트는 무성영화 상영에 덧입혀지는 뮤지션들의 공연이다. 이는 내가 영화제에서 가장 좋아하는 섹션이다. 영화제를 갈 때마다 이 섹션은 빠짐없이 관람했는데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온 덕분에 찰리 채플린 감독의 영화 <키드>, 버스터 키튼 감독의 <셜록 2>, <손님접대법>, <카메라맨>을 관람할 기회를 얻었다

 

영화제 이틀째부터 새로운 여행 메이트가 합류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무주산골영화제를 함께 가는 여행 메이트다. <비포 선라이즈> 주인공처럼 여행지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냐고? 나도 늘 바라긴 하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이는 더 운명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운명적 혈연관계로 맺어진 관계, 엄마다. 엄마는 엄마도 올래?”라는 말을 덥석 물고 내가 온 다음날 홀로 무주에 왔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의 첫 혼자 여행길이었다. 평소에도 나의 다양성 영화메이트였던 엄마는 무주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재밌게 관람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등나무운동장에서 캔맥주와 함께 깔깔거리며 무성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새벽까지 숲속에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낭만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덕유산 대집회장으로 향했다. 

 

- 덕유대집회장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낭만에는 고통이 따랐다. 앉아서 영화를 보자니 허리가 아팠고, 돗자리 위로 누워 있으면 등짝이 배겼다. 무엇보다 여름밤 산속의 추위를 얕봤다.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이 뼈를 뚫는 느낌도 깊어졌다. 엄마는 가방 속에서 옷들을 꺼내 있는 대로 겹쳐 입었다. 어딘지 우스꽝스러운 패션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가져온 비닐 우비를 나눠 덮었다. (생각보다 엄청 따뜻했다!) 이건 꼴이 딱 노숙자 아닌가 싶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관객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화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오들오들 떨던 감각적 기억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원래 고생하는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법. 고생은 추억으로 미화되었고 우리는 영화제에 함께 가는 메이트가 되었다. 다음 두 번의 여행길엔 여동생도 함께했다.

 

-엄마, 동생과 함께 찍은 무주산골영화제 포토 티켓-

 

 

두 번째 방문에 대한 기록은 개인 블로그가 아닌 씨네플레이에 남겨졌다.(기사 하늘 아래 누워서 보는 무주산골영화제를 강추하는 이유https://c11.kr/655s) 2017년 무주산골영화제를 방문하기 전 나는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첫 직장을 얻었다. 어쩌다 보니 영화 기자(에디터)라는 직함을 얻었고 1년 전과 달리 글을 쓰고 월급을 받게 되었다. 신입 시절 무주산골영화제에 간다고 휴가를 낸다고 하자 선배들은 무주산골영화제가 뭐냐고 물었다. 이때만 해도 아직 영화 관계종사자들도 잘 모르는 영화제였다. 전직 산골 블로거로서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발동했는지 무주산골영화제 체험기기획 아이템을 냈고 영화제에 두 번째 방문했다. 두 번째라 한결 느긋하게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 셔틀버스를 놓쳤으면 근처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깔고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재미, 보고 싶은 영화에 목숨 걸지 않고 그냥 남는 좌석에 앉아 우연히 좋은 영화를 발견하는 재미 같은 것들이다. 영화제도 해를 거듭할수록 셔틀버스와 상영관 문제 등을 해결해갔고. GV와 야외 책방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구성하며 제법 영화제의 틀을 갖춰 한결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무주등나무운동장-

 

영화 기자로서 영화제 방문이 일이 되면서 영화제는 이제 더 이상 일상 탈출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무주산골영화제는 다르다. 이미 한차례 개봉해 입소문 났던 국내외 다양성 영화들을 모아 재상영하는 걸 보러 무주까지 내려갈 영화 기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무주산골영화제는 여전히 남모르게 훌쩍 떠날 수 있는 몇 안 남은 영화제기도 하다. 그래서 이 좋은 영화제를 많이 알리고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골의 작은 영화제로 남아 나만 알고 싶기도 하다. 영화 기자의 첫발을 내디딘 때와 비슷하게 맞물려 성장해 온 이 영화제가 내게는 더 특별하기 때문이다.

 

절대 휴가 내고 영화제는 가지 않겠어!’라고 마음먹었지만 어찌 될지 모르겠다. 어느새 이번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들을 상영할지 예측하며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영화들을 이번에도 야외 상영으로 만날 수 있길 바라며, 부디 미세먼지의 여파가 청명한 무주의 여름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부용

씨네플레이 기자. 3년 전 백수 시절 우연히 산골 블로거로 인연을 맺은 무주산골영화제와 어쩌다 보니 계속 얽혔다

이 영화제처럼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  

 

CopyRight Since 2016-2019 MJFF.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