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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수필

[산골수필 2호] 안과 밖_김의석 영화감독

안과 밖


 

 

 

 

 

극장 문은 닫히고, 빛은 차단된다. 영화는 시작 직전, 암흑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현실을 지나 이제 펼쳐질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교량. 아직 시작하지 않은 영화를 기대하며 몸의 방향이 온전히 영화를 향하게 둔다. 두고 온 현실은 나와 유리되어 그 나름의 시간으로 흘러갈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가 인식하던 나와 작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잠시 통념 속의 시간을 지우고, 새로운 개념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여기는 두 세계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영역이다. 첫 번째 빛 입자가 스크린에 부딪히기 직전까지 나는 잠시 시간의 경계인이 되고, 무국적자가 된다. 이 짧은 순간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 순간에 나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두고 온 현실을 정리하고, 펼쳐질 세계를 상상한다. 그 암흑에서 바라보는 거기에 나는 정말 영화가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신앙처럼 내게 자리 잡아 평생 극장을 다니는 이유가 된다. 암흑 속에서 내가 봤던 그 영화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를 만들고자 꿈꾸고 노력하는 일과는 별개로) 삶을 살아가며 나는 현실 안에서 어떤 찰나의 틈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분투한다. 그것은 짧은 깨달음이거나 내 나름의 성찰일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시간이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현실의 시간 안에서 가능성의 결을 발견하게끔 발견한 결 안에서도 또 다른 결을 발견하게끔, 영화는 나를 안내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현실 안에서 자리 잡는다. 나는 또 한 번 그 경험을 꿈꾸며 내 세계를 재구성하려 암흑을 지나 보낸다.

 

 

 

 

 

 

영사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들어온다.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밖을 나선다. 벌써 극장 안 환경에 적응하였는지 나는 익숙지 않은 온도와 바람, 빛에 놓인다. 다시, 잠시 내가 부재하던 시간 안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나를 밀어 넣으며 나는 나를 기다려준 내 시간과 방금 내가 경험한 이 시간을 집산하려 노력한다. 세계는 내가 없는 사이 분명하게 변화했다. 이 익숙한 세계는 이제 내게 새로운 세계이다. 내 눈은 노출 차이를 감지하고 그 가운데 적정의 선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극장 안과 밖의 그 문턱을 넘는 일. 영화를 보는 일을 나는 그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어쩐 일로 이 다시 만나는 세계가 나를 열렬히 환영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온통 생의 의지들로 가득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극장을 나왔을 때 내 앞에 펼쳐지는 이런 초록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영화를 보며 몰입한 시간 덕에 으레 보았던 도시의 그림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방심한 사이 내 인식과 완전하게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이 어쩌면 앞으로도 잊지 못할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받은 가장 큰 인상이다. 물론 극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그럼에도 극장이라는 공간은 내게 한결같은 느낌이다. 같은 방향의 의자들, 커다란 스크린, 강력한 스피커. 그 속에서 변화하는 것은 나와 세상이다. 때로는 그 변화 속에서 방황하거나 지쳐서 극장을 찾기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드라마를 경험하고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이 익숙한 생경함,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이 강렬한 자연광과 초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데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강렬한 자연환경 안에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졌다. 어떤 드라마도 포용할 수 있는 밖. 나는 마음 놓고 안에서 밖으로 다시 밖에서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과 편집을 해나가는 중에는 나의 영화가 개봉을 하고, 관객과 만나는 과정을 감히 상상해보질 못했다. 물론 꿈꾸긴 하였으나 개봉이나 영화제 상영 같은 일은 팔자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상정한 관객과 책상에서 대화하며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영화를 극장에서 보자면 매번 너무나 큰 고통이 뒤따랐다. 누군가가 상영 직전의 암흑 속에서 기대하고 꿈꾸었던 영화에 조금이라도 도달은 했을까. 극장 문턱을 나서며 그이는 어떤 세계를 마주하게 되었을까. 내가 과연 내 드라마에 책임을 다했을까. 한창 나를 채찍질하며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에 무주산골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강렬한 극장 밖을 경험한 것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서는데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고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하며 다음을 꿈꾸는 시간의 나를 굳건하고 의연하게 무주의 자연이 환영해주고 있었다. 내 세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고, 그 세계를 내가 조금은 더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의석

영화감독. 2017년 데뷔작 <죄 많은 소녀>를 완성하였고

6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뉴비전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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