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침략자 Before We Vanish

구로사와 기요시 Kiyoshi Kurosawa

일본│ 2017 │ 129분│극영화

일본 호러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2017년 작이다. 인간의 몸에 침투한 외계인들이 지구 침략을 위해 인간이 가진 개념을 수집하여 인류를 말살하려고 한다. 영화는, 실종 후 외계인이 되어 돌아온 신지가 나루미를 통해 사랑의 개념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평화와 회복이 시작되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의 주특기인 호러 장르 대신 로맨틱 코미디와 SF장르를 활용해 극단 이키우메의 연극 <생매장>을 영화화한 작품이며, 이는 5부작 스핀오프 TV드라마와 함께 기획되었다.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주하여 스크린에 구현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특유의 장기가 돋보인다.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

2018. 06. 24. 일요일 무주전통생활문화체험관

진행 : 정한석 영화평론가

정한석)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원작인 동명의 희곡을 영화로 만든 것이 <산책하는 침략자>입니다. 이 영화를 다시 드라마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로 만들었고, 그 드라마를 다시 영화화했습니다. 마지막에 제작된 영화는 전에 다른 국내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은 있습니다. 좀 독특한 영화 만들기 방식이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을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은 있을 겁니다.

감독에 대해 말씀드리면 제가 아는 한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봉준호 감독이 이 감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봉준호 감독이 자기가 생각하는 영화의 신 중 한 사람입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아주 잘 알려진 영화광이고, 호러 영화의 대부라고 말씀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호러라고 하는 것이 사지절단이 아니라 분위기로 호러를 만들고, 이 부분에 있어서 감독은 굉장한 장인이자 최고의 작가라고 소개해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작품으로는 <은판 위의 여인>이나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같은 영화가 있습니다. 이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특징 중 독특한 점이 있다면 호러 장르를 만들건 혹은 다른 장르를 만들건 철학적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감독의 초기 얘기를 해드리면, 감독으로 데뷔하기가 지금도 어렵지만 1970~80년대 일본 영화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핑크영화 붐이 있었는데요. 쉽게 이야기하면 그냥 에로영화입니다. 감독이 어떤 내용의 무슨 영화를 만들어도 좋지만, 영화 속에 정사장면이 몇 번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 핑크장르의 원칙 같은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재능은 있는데 데뷔가 쉽지 않은 그 당시의 감독들이 핑크영화로 많이 데뷔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초기에 핑크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도레미파 소녀, 피가 끓는다>라고 하는 제목을 가진 영화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초기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핵심적인 이유는 이 감독은 어떤 장르에서든지 항상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일종의 사유 혹은 철학적 질문들을 담고자 노력해왔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외계인이 침략하고 거기에 대해 방어 전략이 구사되어야 할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외계인 영화를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같은 영화를 보면 커다란 연체동물처럼 생긴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외계인 영화에서는 전통적으로 외계인의 외향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외계인의 외향은 고사하고 외계인의 존재 자체도 등장하지 않죠. 장준환 감독이 만든 영화 <지구를 지켜라> 보신 분들 계시죠? 거기에서는 외계인을 어떻게 물리치는가 혹은 괴롭히는가? 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때수건으로 외계인 발등을 비빈 다음에 살갗이 벗겨지면 거기에다 물파스를 바르는 희한한 방식의 고문 장면이 영화에서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외계인 영화에서 외계인은 어떻게 생겼고 그 외계인을 어떻게 방어하고 물리치는가 하는 문제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산책하는 침략자>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거의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감독 자신이 이번 영화에 참고했다고 하는 팀 버튼 감독의 <화성침공>이라는 영화도 톰 존스의 노래로 외계인들의 뇌를 깨뜨려서 물리치는 아주 황당무계한 내용인데요. 이 영화에서도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적어도 <산책하는 침략자>에서는 외계인의 실체가 등장하지 않죠. 여기에 영화의 주안점을 둔다면 이것도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바디스내처 Bodysnatcher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디스내처라는 말은 시체 도굴꾼을 일컫는 말입니다. 시체를 도굴해서 해부학자한테 팔아넘기는 사람을 바디스내처라고 하는데요. <산책하는 침략자>야 말로 외계인이 지구인의 신체를 도굴하고 훔쳐서 자기의 것으로 삼은 다음에 그것 안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 그런 내용이지 않습니까? 일종의 바디스내처 장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디스내처 장르영화가 사실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전통도 갖고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한때 자기의 스승으로 생각했던 미국의 돈 시겔이라고 하는 감독이 있는데요. 이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신체 강탈자의 침입> (국내 개봉명 <외계의 침입자>)이 뒤에는 필립 카우프만, 아벨 페라라 감독에 의해서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외계인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정신은 외계인이지만 신체적 외향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안에서 인간은 누구고 어떻게 식별되는가 하는 문제가 장르적으로 중요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그 문제를 장르적이기보다는 철학적인 문제로 풀어가고 있는 거죠.

이런 바디스내처 장르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인간의 정체성이란 어떻게 설명되고 어떻게 존재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바디스내처 장르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TV 주말 연속극을 보시면 출생에 얽힌 비밀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게 기억 상실입니다. 누군가 기억을 잃게 되면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르게 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면 새로운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부분들을 코믹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그런 드라마들의 요건이고 재능입니다. 예전에 한예슬이라는 배우가 나왔던 <환상의 커플>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못된 부유한 집의 딸이 기억을 잃고 착하고 순진한 누군가로 변해가는 내용을 다뤘었습니다. 혹은 전 대통령이었던 그분이 몹시도 좋아했던 <시크릿 가든> 드라마를 보시면 서로의 몸속에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들어가는 내용이 등장하죠. 이 얘기를 말씀드린 것은 인간의 정체성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각각의 요건에 따라서 변해가는가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유해진 배우가 나왔던 영화 <럭키>를 보면 거기서도 기억을 잃은 잔혹한 킬러가 갑자기 순진무구한 청년으로 돌변해서 정체성이 바뀌는 내용이 나오죠.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그래서 당신과 타인의 차이는 뭔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계속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뭔가 푸념처럼 늘어놓은 말을 이 외계인들에게는 인간의 ‘나’ 혹은 ‘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인 것처럼 들린다는 거죠. 영화 중반부에 이르기 전에 등장했던 그 대목은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굉장히 친절한 방식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산책하는 침략자> 속 외계인들의 말에서도 등장합니다. 그들이 지구에 온 건 인간들의 개념을 빼앗기 위해서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실생활에서 ‘아이고, 저런 개념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식의 표현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말을 바꿔서 외계인들은 그 개념이라는 걸 지금 가져가려 하는 거죠. 그렇다면 그 개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 있었고 어떤 것들이 탈취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첫 번째로 가족이라는 개념입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탈취당하니까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 여고생이 부모들을 살해하고 또 한쪽에서는 처제와 형부 그리고 언니와 동생 사이에 서로 걱정해주고 염려해주는 것에 대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관계가 형성되어 버립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뺏기자 인류의 오래된 관계인 가족의 관계가 갑자기 절단나죠.

일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표현됩니다. 나루미의 상사에게서 일이라는 개념을 뺏자 그가 갑자기 어린애처럼 놀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약간 동의가 잘 안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일을 뺏으면 바로 놀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이라는 개념을 뺏겼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아마 그런 장면을 넣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조금 흥미롭고 반전적인 대목은 히키코모리 청년이 등장하는 대목인데요. 그 청년이 사실 히키코모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깥으로 못 나왔던 이유는 타인에 대한 공포감때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가져간 게 무엇이라고 영화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히키코모리 청년에게서 이 외계인이 뭔가를 가져갔습니다. 탈취해 가버린 거죠. 탈취해가니까 이 청년이 그제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다른 대목에서는 뭔가 부정적인 일들이 발생했다면 이 대목에서는 뭔가 긍정적인 사태가 도래한 거죠.

노년의 정부요원 기억나시죠? 이 사람에게서 적개심이라는 걸 뺏어가니까 갑자기 상대방과 싸움 의지를 상실하고 그냥 그 자리에 넋 놓고 앉아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가족과 일과 그리고 공포심과 적개심 같은 인간의 개념들을 외계인들이 빼앗아 갈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감독은 보여주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당연히 있겠죠. 사랑이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사랑을 정서 혹은 감정이라고 얘기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듯 개념이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마지막 남은 개념은 사랑입니다. 근데 이 사랑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부분은 가이드라고 하는 일종의 대행자인 것 같습니다. 바디스내처 장르를 꽤 본 편이고 꽤 알고 있다 저도 생각했습니다만 가이드가 필요한 외계인의 침략법이라고 하는 것은 저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외계인이 인간을 전혀 모르고 있어서 알고 싶어 한다면 가이드 혹은 대행자가 필요하겠다는 상상에 동의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이드가 영화 속에서 등장하고 가이드를 바라는 외계인이 등장했을 때 그 둘 사이에 우주적인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죠.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 일종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 겁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건 서로에 대한 어떤 마음에 해당하는 문제일 테니 그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 문제를 두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굉장히 아이러니 한 일이 발생합니다. 사랑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하는 겁니다.

사랑은 빼앗기지 못하거나 혹은 빼앗을 수도 없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이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후반부의 중요한 쟁점이었을 겁니다. 주인공 신지 몸에 들어온 이 외계인이 나루미에게서 사랑을 빼앗아 갑니다. 항상 하는 방식으로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마음 혹은 정서를 빼앗아 가죠. 다르게 말하면 사랑이 여기에서 저쪽으로 갔다면 신지가 나루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사랑은 빼앗긴 게 아니라 옮겨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신지로 행동하고 있는 외계인이 나루미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고 저기에서 다시 여기로 옮겨가는 문제에 해당할 뿐 그걸 빼앗아서 누군가 자기의 것으로 봉쇄한다는, 자기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겁니다. 인류가 가진 개념 중에 사랑이라고 하는 정서 혹은 감정은 그런 것이라는 거죠. 

이 영화 마지막을 한번 생각해보죠. 좀 황당하게 끝나지 않습니까? 

외계인이 갑자기 두 달 뒤에 침략을 멈췄을까요? 

신지의 몸에 들어가 있는 외계인은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구의 것들 무언가를 배우면서 현명해진 탓이 아닐까요’라고 설명해주죠. 그럴 수 있습니다. 마치 ‘현명한’이라고 하는 개념을 그들이 탈취해갔다면 혹은 평화라고 하는 개념을 탈취해갔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전제를 놓고 중심을 생각해본다면 이 전쟁이 갑작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당연하게도 그 외계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타자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전쟁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상대방을 침탈해야 할 이유도 사라져버릴 겁니다. 

물론 감독으로서는 마지막에 좀 더 미궁에 빠져있는 정서를 남기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한명의 관객으로서 저의 생각은 사랑의 가치가 이 영화 속에 치부를 침략과 전쟁으로부터 어떻게 살려내는가 혹은 보호시켜놨는가에 대한 굉장히 아이러니한 반전의 방식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건 일종의 테마와 관련된 긴 설명이었습니다. 이제는 형식적 측면에 관해 설명하려 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에는 독특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인물들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인물들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은 어느 영화에서나 다 등장하죠. 그런데 그게 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적 표식이라고 말할 수 있냐면 감독이 이 장면을 찍을 때 굉장히 구식인 방식으로 찍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찍을 땐 실제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죠. 그런데 이 감독은 항상 조그마한 ‘자동차세트’안에 인물들을 몰아넣고 스크린프로세스라고 부르는 배경을 걸어 놓고 1940~50년대 헐리우드 영화들이 했던 그런 방식으로 찍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장면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최근 영화들의 아주 중요한 표식같은 게 되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매니아 팬들은 감독이 혹시라도 영화에서 이 자동차 장면을 빼면 그게 왜 안 들어갔느냐고 막 아우성을 칩니다.

이번 영화에서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자동차 장면을 굉장히 넓힌 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인물들이 지나갈 때 그 뒤의 장면을 한번 생각해보시면 굉장히 이국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차창 밖을 보면 풍력기가 바깥에서 돌고 있습니다. 마치 일본 사람들이 일본에서 차를 모는 것이 아니라 서부 유럽에서 차를 몰고 있고 그곳을 벗어나서 모종의 몽환적인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거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배경으로 사용하는 스크린프로세스가 만들어내는 효과를 반투명막 같은 효과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효과는 영화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장면에서 신지가 사랑을 빼앗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두 사람 뒤의 창문을 넓게 잡았습니다. 그 창문 바깥에서는 포탄이 쏟아지고 먼지가 일어나고 마치 우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을 스크린프로세스화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은 화력이라고 하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그것을 붉고 불투명하게 인공적으로 덧칠해서 마치 지구라고 하는 안과 우주라고 하는 바깥 사이에 놓여있는 반투명막처럼 보여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를 나중에 또 보시면서 왜 감독이 이런 걸 계속해서 선택하고 있는지 알게 되시면 저한테 꼭 연락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굉장히 알고 싶은 부분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토크를 마쳐보도록 하죠.

감독이 이 영화에서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에 대해 본인 역시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대목을 등장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영화광 출신입니다. 영화광 출신들이 대체로 이런 걸 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영화의 장면을 차용하는 거죠. 이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병원에서의 정체성 논란 대목을 기억나십니까? 굉장히 폭력적이고 진지하고 혹은 아주 어두울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벌어질 때 발랄한 왈츠풍의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아주 진지한 장면에서 우스꽝스러운 음악을 넣어서 그 장면이 뭔가 부조화를 일으켜 그것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의 대가가 있다면 바로 봉준호 감독입니다. 영화 <괴물>을 보시면 죽은 희생자들의 장례식 장면에 이어지는 일련의 장면이 너무 진지하고 비극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 왈츠풍에 음악들이 들어가면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슬픔과 비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이한 부조화를 일으키는 흥미로운 대목들이 등장하는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그 부분에 매력을 느끼고 자신의 영화에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 중 넓고 넓은 평야에서 한 사람이 비행기에 쫓기고 있는데 비행기가 그 사람을 어떻게 쫓고 있는지, 이 사람이 저 비행기를 지금 어떤 방식으로 쳐다보고 있는지가 그 장면 안에서 흥미와 긴장감 있게 구성되고 있습니다.

<산책하는 침략자> 마지막에 젊은 청년의 몸에 들어왔던 외계인이 저널리스트의 몸에 들어간 다음에 죽을 때 장면 기억나시죠? 비행기가 그를 향해서 날아와서 폭탄을 내려 떨어진 그 장면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대한 자기 흠모를 영화적으로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이 황당무계하고 철학적인 외계 침략 영화에 대해서 감상해보는 기회를 가지셨고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한 번쯤 되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관객 1) 

저는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를 봤었는데요.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는 오늘 봤던 <산책하는 침략자>와는 분위기가 좀 정반대로 사랑에 관해 얘기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요. 평론가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셨는지요?

정한석) 

저는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에 대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영화 사이의 겉이 다른 영화인 것처럼 다루는 대목들, 그리고 그 대목에서의 핵심적인 부분들이 아주 다르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가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다르다고 말씀드릴 순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었던 걸 전해드리면 드라마는 공포적인 요소가 더 강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호러 장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모호한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보다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좀 더 강화한 게 영화인 거 같고 드라마는 아무래도 호러 색깔이 드러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관객 2) 

영화 중반부까지는 어떤 느낌인지 캐치를 못하다가 마지막 장면에 폭탄 내려오고 불꽃이 날리는 걸 보면서 히로시마가 갑자기 떠올랐어요. 계속 ‘침략’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것과 외계인이 3명이 등장하는 것도 2차 세계 대전 때 추축국들을 나타내는 거 같고 외계인이 사랑을 이해하면서 침략을 멈춘다는 느낌을 받아서 어떻게 보면 2차 세계 대전을 다시 한번 미화시키려고 하는 코드가 있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한석) 

2차 세계 대전을 떠올리는 해석 자체는 청충들의 해석이니까 그러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독일, 일본같이 그 당대의 국가 간에 국제정치학적 위치나 관계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이 영화 안에 도입하려고 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질문하신 분께서는 그렇게 해석하실 수 있지만, 그 해석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재고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청중께서 말씀해주신 질문 안에 정말 중요한 대목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것이 2차 세계 대전이든 1차 세계 대전이든 혹은 고구려 시대 혹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이든 간에 그건 적어도 전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정확하게 영화의 대목을 청중분께서 고스란히 받아 안으셔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되게 아닐까 하는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긴 말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