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산골토크 다시읽기

[산골토크] 지구 최후의 밤

 

지구 최후의 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비간 Gan Bi
중국2018138드라마, 미스터리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카일리로 돌아온 남자, 과거에 만났던 한 여인의 흔적을 발견한다.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함께한 여름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몽환적인 장편 데뷔작 <카일리 블루스>로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중국의 떠오르는 신예 비간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 >, <만추>의 주연 배우 탕웨이의 2년 만의 영화 컴백작이다. 눈을 사로잡는 시각적인 이미지메이킹과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영화로,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드론 촬영과 매끄러운 디지털 합성 작업을 통해 완성된 총 59분에 달하는 3D 롱 테이크 쇼트는 압도적이다. 2018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고, 2018 금마장영화제 촬영상, 음악상, 음향효과상을 수상했다.


7회 무주산골영화제

2019.06.08. 토요일 무주산골영화관 태권관
진행 : 정성일 영화평론가 겸 영화감독
  

정성일)
안녕하세요. 무주산골영화제를 대신해서 이 영화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비간이라는 중국 감독의 <지구 최후의 밤>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중국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비간이라는 이름이 아마 낯선 이름일 겁니다. 중국 영화감독들을 분류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만 다른 나라 영화사의 감독들을 연도별로 분류해나가는 방식과 달리 중국 영화 관객들은 세대별로 나누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신 대로 제5세대 감독 그러면 천카이거, 장이머우 같은 감독들. 이른바 베이징영화학원 78학번 세대, 그러니까 덩샤오핑 시대에서 다시 시작한 감독들을 제5세대 감독들이라고 부릅니다. 6세대는 피의 천안문이 벌어진 다음 감독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감독은 장위엔이라는 감독이 대표 감독일 겁니다. 이전 세대들과 달리 장위엔 세대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필름 카메라가 아니라 비디오테이프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16mm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중국 영화감독들은 필름으로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중국 정부 당국의 허가가 없으면 영화를 찍을 수가 없었는데, 6세대 감독들인 피의 천안문 세대들부터 이른바 지하전형 불법으로 영화를 찍는 세대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중국 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6세대의 감독들은 민주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메시지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이 영화들이 다소 앙상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세대들이 지하전형 안에서 시작을 했지만 1997년도에 중국 영화를 구하기라도 하듯이 젊은 28살의 지아 장 커 감독이 <소무>라는 영화로 등장하게 됩니다. 7세대의 감독들은 미학적인 성공도 거두었고 한편으로는 불법 전형, 그 지하전형의 방법으로 새로운 미학을 성취해내기도 했으며, 동시에 신문물로부터 디지털영화로 넘어가는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지아 장커의 시대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결국 중국 영화의 새로운 세대는 7세대가 마지막인가라는 서방세계의 비평가들 질문이 있었을 때 이른바 8세대가 등장을 했습니다. 8세대 감독들이라 불리는 이름 중에는 올해 칸영화제에 경쟁으로 온, 이미 베를린영화제에서 <백일염화>(2014)라는 영화로 황금곰상을 받았고, <더 와일드 구스 레이크 The Wild Goose Lake>(2019)라는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에 참석한 디아오 이난이 첫 번째일 것이며, 아쉽게도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2018)라는 단 한 편의 영화를 찍고 자살해버린 후 보 감독,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이 보신 비간을 8세대 영화감독들이라 부릅니다. 다만 아직 서방세계의 비평가들에게 8세대 영화감독들이 어떤 미학적 경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혹은 어떤 테마의 공통점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혹은 어떤 스타일에 대해 공통점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합의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감독들에게 보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한 가지 공통점은 이전 감독들은 아 이 사람 중국 감독이구나.’라는 것을 딱 알 수 있는 어떤 중국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지만 8세대 영화감독들은 중국, 홍콩, 대만 영화의 스타일들의 경계 없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나타나곤 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께서 <지구 최후의 밤>을 보시면서 이 스타일을 본 것 같아. 근데 그건 중국 영화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린 분들이 계셨을 겁니다. 이 영화를 보면 말할 것도 없이 즉각적으로 왕가위 감독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죠. 또는 영화에서 열차를 타고 달려가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가 떠오를 수밖에 없죠. 말하자면 이 8세대 감독들은 그 다오반이라고 부르는 불법 DVD를 소낙비처럼 맞으면서 서방세계의 영화들을 본 세대들입니다.

7세대 감독들을 만나 그 감독들에게 당신은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 누굽니까?’라고 물으면 중국 영화감독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자국 감독인 것처럼 같은 중국어를 쓰는 화어권 감독인 허우 샤오시엔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그들의 관례적인 대답처럼 되어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8세대 감독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글로벌 시네필의 세대가 중국 영화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 한국 영화에서 1990년대 말에 시네필 세대들이 한국 영화에 일찍 도착하기 시작했죠. 알고 계신 대로 자타가 공인하는 시네필 박찬욱, 김지운, 시네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감독이 한국 감독이야, 프랑스 감독이야?’ 애매한 홍상수. 기타 등등.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하면 망설이지 않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 누구냐?’ 예전에는 다 어떤 한국 감독들을 이야기했지만, 봉준호는 망설이지 않고 브라이언 드 팔마, 존 카펜터,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세 사람 이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시네필들의 세대가 한국에서는 1990년대 말에서 21세기가 막 시작했었을 때 도착했었던 것에 비한다면 중국 영화 세대들은 이제 그 세대들이 도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중국 영화감독들은 두 종류의 감독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족 출신들, 그리고 한족이 아닌 감독들. 중국 사람들에게 한족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본 <지구 최후의 밤> 감독인 비간은 한족 출신이 아닙니다. 카일리라는 남방계 감독인데 비간 감독 나이가 198974일생입니다. 서방세계에서 비간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당신이 가장 영향을 받은 감독이 누구냐’.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러분들이 딱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겁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틀림없이 이 감독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빼다 박은듯한 수많은 장면이 나옵니다. 기차 소리가 계속 들리고, 책상 위에 있는 물컵이 계속 이동하기 시작하고 위에서 물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미장센의 측면에서 보면 집에 돌아왔는데 집 천장에서 물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 이건 타르코프스키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감독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이렇게 두 감독을 이야기했습니다. 또 망설이지 않고 화어권 감독 중에서는 허우 샤오시엔, 왕가위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단지 영향을 받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장면을 그냥 가져다가 쓴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건 오마주의 차원을 넘어서는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조차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비간이라는 이 감독에 대해서 서방세계의 평론가들은 이 젊은 중국 감독이 새롭게 독창적으로 해석해내고 있다.’라는 평이 한쪽에 있다면, 또 한쪽에서는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게 아닌가. ‘라고 의심하는 비평가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지 궁금합니다. 

 

<지구 최후의 밤>으로 비간의 영화를 처음 본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라는 부분은 영화가 진행되다가 1시간 7분 지점에 3D 안경을 딱 쓰는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롱테이크로 계속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끊지 않고 하나의 쇼트로 이어가는 것을 보고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이 영화는 비간이라는 감독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첫 번째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이건 이 사람의 스타일이구나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비간이라는 감독의 영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이 감독의 첫 번째 영화를 먼저 설명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카일리 블루스 Kaili Blues>(2015)라는 영어 제목을 갖고 있는데 한자 제목은 <노변야찬 路邊夜餐>이라고 썼습니다. 노변은 길거리의 길, roadside. 야찬은 밤에 식사를 한다는 뜻인데 이 노변야찬이라는 제목은 roadside picnic이라는 영어 제목이 있기도 합니다. 이 영어 제목을 딱 듣는 순간 아 나 이 영어 제목이 뭘 이야기한 건지 알아.’라고 반응하신다면 틀림없이 러시아 SF소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실 겁니다. SF 소설 작가 중에서도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와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쓴 [노변의 피크닉]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이것을 영화화했는데 그것이 바로 <스토커 Stalker>(1979) (한국에서는 <잠이자>)입니다. <스토커>를 보신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간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를 보고 감명받고 내가 중국에서 다시 한번 찍는다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찍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보신 <지구 최후의 밤>도 영화가 절반으로 나뉘어있는 것처럼 <카일리 블루스>도 영화가 절반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카일리 블루스>는 시골의 한 의사가 주인공입니다. 고향에서 편지가 오고 시골 의사인 남자는 고향 카일리에 가야 할 일이 생깁니다. <지구 최후의 밤>과 똑같이 아주 모호한 상태로 영화가 일종의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 픽스 Twin Peaks: Fire Walk With Me>(1992)가 떠오를 만큼 뒤죽박죽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온 편지와 사진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카일리 블루스>를 반복해서 봐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튼 이 남자는 밤마다 나쁜 꿈에 시달리고, 환상인지 기억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인서트들이 계속 끼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고 45분쯤 카일리로 가는 기차를 탑니다. 기차를 타고 잠깐 깜빡 졸다가 눈 떠보니까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카일리에 내립니다. 거기서부터 45분 동안 롱테이크 원쇼트입니다. 내리면 계속 쫓아가는데 <카일리 블루스>는 단순히 쫓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오토바이를 카메라가 쫓아가고,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도 쫓아가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보니까 밧줄을 달아서 밧줄에 매달려서 카메라로 배를 쫓아가서 강도 건넜다고 합니다. 그렇게 45분 동안 원테이크로 진행되는데 <지구 최후의 밤>보단 그래도 친절합니다. 맨 마지막 장면은 이 남자가 롱테이크가 딱 끝나는 순간 기차에서 잠이 깨고 고향에 도착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렇게 비간은 영화를 둘로 나누어 놓고 이쪽과 저쪽을 다른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촬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카일리 블루스>는 낮에 진행됩니다. 우리가 오늘 본 <지구 최후의 밤>은 다 밤에 진행되고 있죠. <카일리 블루스>에서도 <지구 최후의 밤>에서도 낯선 장소에 갔었을 때 여기 딱히 어떤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비밀이 밝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저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방세계의 비평가들도 그럼 도대체 여기서 뭘 찍고 싶었던 거냐묻자 비간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풍경을 찍고 싶었다.’ 그리고 그 풍경을 시적인 풍경, poetic landscape라고 표현하며 ‘poetic landscape 포에틱 랜드스케이프를 찍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비간은 영화만 찍는 건 아닙니다. 이 친구는 시를 쓰고 있고 <카일리 블루스>는 영화보다 먼저 시집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시집을 데뷔작 영화로 찍은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오해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비간 난 너의 스타일을 알겠어. 넌 그러니까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은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와 중국 감독들의 관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감독들은 대부분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유럽 감독들이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은 것과 다릅니다. 유럽 감독들은 미학적으로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중국 감독들이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은 건 중국 사회에서 도망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체제 안에서 리얼리즘 영화를 찍는다는 건, 고스란히 사회문제를 떠안겠다는 뜻이고 부딪히겠다는 뜻이고 그걸 다루겠다는 뜻입니다. 그 말뜻은 첫째, 즉시 검열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고, 둘째, 이 논제를 다루는 순간 자기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과 계속 마주해야 하고, 가장 큰 건 이 감독들은 예술가로서 여기를 떠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몸이 떠날 수 없을 때 영혼이라도 떠나고 싶겠죠. 이들의 예술가적인 영혼이 떠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마 초현실주의일겁니다. 중국이라는 사회에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려 주십시오. 중국은 공식적으로 귀신 영화를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겠지만 중국이 유물론의 나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비간은 자신이 초현실주의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번 인터뷰에서 하는 얘기는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추억과 시간이다. 나는 추억과 시간을 찍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추억과 시간을 찍기 위한 두 가지의 매듭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어떤 환상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비간의 환상은 목표가 아니라 그 두 가지를 매듭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의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난히도 영화들 사이에서는 환상과 현실, 혹은 기억 또는 추억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감독들이 계속해서 등장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1997)를 보며 언젠가 21세기가 되면 모두 1990년 말에 본 이 영화 스타일로 영화를 찍게 될 거야.’라고 저 혼자 중얼거렸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가 등장했습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지구 최후의 밤>에 어떤 장면들이 떠오를 겁니다. 여기까지가 환상인지 여기서부터가 기억인지 혹은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그 경계의 희미한 선들. 물론 이걸 더 밀고 나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여기까지 오면 영화를 보고 다들 물어보죠. ‘이 영화의 미학이 뭡니까라고 물어보지 않고 다들 나와서 이거 무슨 이야기에요?’라고 물어보는 감독. 말하자면 앞에 아핏차퐁 영화를 봤을 때 비간은 무언가 영화를 만드는 어떤 대답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영화가 아핏차퐁 영화와는 다르지만 분명한 건 아핏차퐁 그림자도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비간은 본인이 영향을 받은 감독의 이름을 한 사람 더 말했는데 바로 차이밍량입니다.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 타이베이의 비 내리는 어느 날 문 닫는 극장에 갔었을 때 극장에서 만나는 귀신들의 이야기이고, 차이밍량의 <떠돌이 개>(2013)는 죽은 아내의 귀신과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정말 꼼꼼히 들여다봐도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환상인지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구별하기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비간은 이 계보에서 말하자면 우리가 본 것들을 자기 영화에 리믹스해서 넣고 변형해서 넣고, 때로는 존경심을 바치듯이 하지만 어떤 대목은 틀림없이 이건 훔쳐 온 걸 거야.’라는 느낌을 주는 순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비간의 두 번째 영화 <지구 최후의 밤>에는 2가지 제목이 있습니다. <지구 최후의 밤>은 중국어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영화에 뜨는 영어 제목은 , 밤으로의 긴 여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 제목은 듣자마자 즉시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유진 오닐, 유진 오닐 이 쓴 1939년에 쓴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지구 최후의 밤>의 영어 제목을 갖고 왔음을 비간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희곡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유진 오닐은 1912년에 어느 무더운 여름날을 배경으로 해서 4명의 등장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에 이민 온 완전 돈밖에 모르는 돈에 미친 아버지, 그 옆에는 마약중독인 어머니, 그리고 두 형제가 있습니다. 형은 알코올중독이자 여자에 환장한 형. 그리고 동생은 폐결핵에 걸린 시인입니다. 4명이 보내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냉소와 증오에 가득 찬 하룻밤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라옵니다. 유진 오닐의 이 무대는 한국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희곡 중의 하나입니다. 저도 다른 연출자의 무대로 두 번 정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보고 나면 우울하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죠. 이때 유진 오닐은 이 공간을 그야말로 끝, 갈 곳 없는 절망의 넋두리로 만들어 놨습니다. 비간이 유진 오닐의 희곡에서 영화의 영어 제목을 끌고 왔을 때 염두에 둔 건 영화 전체가 아니라 롱테이크가 시작한 딱 그 부분부터 맨 마지막 끝날 때까지 원 쇼트로 끝내버린 롱테이크 장면에서의 절망적인 하룻밤을 그려내는 걸 아마도 정확하게 스토리로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 무드, 그 분위기, 그 절망, 그 연극적 무대의 기분을 가져온 것일 겁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지구 최후의 밤>을 줄거리를 설명하기 힘든 건 앞부분에 3가지 이야기를 합쳐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3가지 이야기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하나의 스토리로 지도가 그려질 텐데 비간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그러면 3가지 이야기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중심에 있는 이야기이고 다른 이야기들이 이 이야기를 떠받들고 있을까를 생각하는데 이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어느 것을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겁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영화를 같이 본 친구분 혹은 연인들이 끝나고 나서 가시는 길에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두 분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서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비간은 뛸 듯이 기뻐할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니까. 이때 이 3개의 이야기 중 하나는 영화에서 가장 많은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뤄홍우라는 한 사내가 완치원이라는 영화배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를 찾아다니다 결국엔 찾아내지만, 그 여자는 사라집니다. 그러곤 그 여자를 찾아서 카일리의 어느 술집에 찾아갑니다. 하지만 아직 술집은 문을 열지 않았고 저녁이 돼서 극장에 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이야기의 앞에 있는 건지, 이 이야기의 뒤에 있는 건데 앞에다가 갖다 놓아서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애매하게 배치해 놓았습니다. 뤄홍우라는 사내가 다른 여자와 지내면서 한때 로맨스를 가졌었던 완치원이라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앞에 이야기한다면, 여자를 찾으러 간 건지, 얘기를 하고 난 다음에 그 얘기의 기억으로 넘어간 것인지 경계를 애매하게 해놨습니다. 문제는 3번째가 제일 애매합니다. 영화를 보다가 난데없는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영화에서 딱 한 컷 나오며 그냥 지나가는데 우리 기억에 남는 건 뤄홍우라는 사내가 매달려서 고문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 이야기 전체가 고문당하면서 고문의 고통 속에서 떠올리는 기억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냥 이 사람의 과거사 중에 고문 받았던 어떤 한순간이 있었던 건지 애매하게 위치시켜 놓습니다. 3가지 이야기는 앞뒤 순서를 우리가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제 3가지 이야기를 했으니까 한번 정리해 봅시다. 뤄홍우라는 사내가 완치원과 로맨스를 가졌다가 헤어진 다음 그러니까 다른 여자와 지내면서 플래시백을 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를 쫓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뤄홍우라는 사내가 완치원과 로맨스를 가졌다가 헤어져 다른 여자를 만났다가 다시 찾으러 가는 이야기로도 이 얘기를 볼 수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죠. 말하자면 이것을 선형 진행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혹은 시작한 다음에 다시 돌아가서 얘기가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고문을 당하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섬광처럼 머릿속을 지나면서 그 현실은 아주 짧게 보이지만 그 끔찍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긴 로맨스의 과거를 떠올리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비간은 의도적으로 이것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난처한 것은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걸 과거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과거와 몽환적인 상태 중에 이게 몽환적 상태인지 과거인 것인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었습니다. 비간이라는 꽤 까다로운 젊은 감독을 우리가 만난 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 비간 감독이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말하는 건 이 감독의 시간 감각의 모호함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여러분들이 반복해서 계속 보는 소도구가 뭡니까? 계속해서 미장센으로 시계를 볼 겁니다. 그런데 그 시계가 멈춰 서 있습니다. 이 시계가 멈춘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시계를 볼 때 어느 한순간, 영화 속에서의 9시를 계속해서 보는 건지 애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멈추었다는 것하고 시간을 어느 한순간의 포인트로만 접근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정지시킴으로써 이것은 시간의 진공상태로 끌고 갈 것인지 시간을 좇아가다가 어느 순간을 딱 찍은 다음에 수직 가능하게 시작하는 거죠. 말하자면 사람들의 머릿속이라는 건 9시에 머릿속에서 100만 가지 생각, 100만 년을 오갈 수 있죠.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인간의 머릿속을 무한 확장시킬 수 있는지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서 단 하루 동안에 인류 역사의 전체를 다 쏟아부을 수도 있는 것 같은 시간을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가다가 9시에 딱 멈추고 수직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건지 그 시간을 정지시켜놓고 확장해 나간 건지 그걸 애매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비간의 애매한 태도는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자기의 방법론으로 발전시킬 건지 아니면 이 젊은 감독이 시간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호한 상태를 영화 속에서 연출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두 번째 이야기가 훨씬 까다롭습니다. <지구 최후의 밤>에 관한 우리들의 감상에 한계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작년에 바르샤바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봤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 것은 아쉽게도 2D 영화로 봤지만, 이 영화는 원래 3D 영화입니다. 영화 전체가 3D가 아닙니다만, 영화관 입장을 하는데 앞에서 3D 안경을 나눠주는 거예요. 그런데 영화의 어디에도 이 영화가 3D 영화라는 가이드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3D 영화인가요? 안경을 쓰고 봐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안경을 나눠주던 스태프분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당신이 3D 안경을 써야 할 타이밍을 영화가 알려줄 겁니다.” 맨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영화를 쭉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3D가 시작하는 대목은 뤄홍우가 극장에 가서 3D 안경을 끼죠. 그게 사인이에요. 그럼 극장 안이 목불인견이에요. 다들 주섬주섬 안경을 꺼내서 그 대목에서부터 3D 안경을 끼는 거죠. <지구 최후의 밤>2D로 진행되다가 뤄홍우가 극장에 가서 3D 안경을 쓸 때 그때부터 롱테이크 부분 전체를 3D로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롱테이크는 계속 3D로 진행된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여러분은 방금 본 그 영화에서 3D로 상상해주십시오. ‘나는 3D를 본 거야라고 마법을 건 다음에 최면을 걸어서 3D를 떠올려 주십시오. 비간은 이 이야기의 시나리오를 이미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쓴지도 오래됐다고 하지만 영화로 어떻게 찍어야 할지를 몰랐답니다. 비간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는 shooting method, 촬영의 방법론을 찾는 게 굉장히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계속 생각했다고 합니다. 비간의 인터뷰를 보면 나에게 시나리오는 아주 많지만, 문제는 매번 그 이야기를 담는 촬영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고민을 계속했던 것이죠. 우리가 아쉽게도 2D로 이 영화를 보긴 했지만 비간이 지금 우리가 본 <지구 최후의 밤>3D 영화라고 기술적인 의미로 찍은 게 아니라 미학적인 의미로 3D를 찍은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속해서 3D를 찍은 거면 구태여 3D를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이 3D를 미학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이 영화의 핵심이 시간을 3D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는 3D로 이 영화를 다가가야만 이 영화의 어떤 핵심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3D 영화의 효과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공간적인 입체감, 말하자면 두 개의 뷰의 간극을 통해 공간의 깊이를 얻는 것이라고 3D를 정의 내리면서 3D의 효과를 공간적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비간의 생각은 다릅니다. 비간의 생각으로는 3D가 공간적이라기보다는 시간적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3D 영화를 보면서 화면이 페이크라고 느끼고 뭔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느낀다. 오히려 내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영화 밖의 진짜 현실을 살아가면서 착시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사물의 질서에 대해서 3D의 기술적 효과는 우리들로 하여금 리얼한 효과, 진짜 리얼이 뭔지 실제가 뭔지, 말하자면 리얼리티가 아니라 현실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 물의 실제 상태가 뭔지를 3D가 기술적으로 레코딩, 기록해내고 있다고 나는 이해했다.”라고 비간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비간에게 영화는 내가 그렇게 미학적으로 접근했어.’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3D 영화에 접근했었을 때 비간은 한 번도 3D 영화의 테크닉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첫 테스트 촬영을 하고 나서 3D 영화의 촬영이 굉장히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제가 3D 영화에 대해선 매뉴얼 책만 봤기 때문에 3D 영화 촬영의 디테일한 과정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냥 저는 비간의 인터뷰를 읽은 상태로만 여러분들에게 설명해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롱테이크 촬영에 관해 비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2D가 단지 지속의 문제라면 말하자면 2D로 롱테이크를 쫓아가는 건 지속인 거죠. 시간의 지속, 물리적 지속, 공간적 지속 이렇게 쭉 쫓아가고 있으면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어떤 지속의 문제, Duration의 문제라면 3D, 비간의 얘기로는, 공간적인 것을 내가 지금 공간적으로 다가가는 것을 이 3D는 시간적인 것으로 지각하게 만든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인터뷰어가 물어보니 비간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요점은 공간에 시간이 3D를 찍으니까 시간이 잡아당긴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구 최후의 밤>의 롱테이크 장면에서 카메라가 아이를 만난 다음에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타고 내려와서 어떤 마을에 간 다음에 그 마을에서 정체불명의 여자, 완치원을 만나고 그 여자를 쫓아서 그 공간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이때 비간은 <지구 최후의 밤>이 공간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들이 시간을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을 공간으로 이해하지 말고 시간으로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지구 최후의 밤>의 롱테이크 시퀀스를 보고 있노라면 어떻습니까? 일부러 비간은 어떻게 했습니까? 종종 우리가 영화를 보는 동안 길을 잃는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뭔가 이쪽으로 나간 것 같은데 저쪽으로 나간 것 같고 아까 왔던 곳 같은 데 왔던 것 같은 장소로 한참을 갔는데도 원래 장소로 되돌아온 것 같고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가는 게 아니라 A를 놓고 뱅뱅 돈다는 느낌을 계속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게다가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효과 중 하나는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내려간 거고,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올라간 거고 그 마을에 도착한 다음에 이 공간이 위에 있었던 공간인지 아래 있었던 공간인지 구별하지 못하도록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걸 느꼈으니까요. 이 장면을 3D로 보면 엄청납니다. 틀림없이 쫓아서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적으로 밑으로 내려간 효과가 마치 발을 헛디딘 것 같은 기분. 말하자면 길을 잃었을 때 비간은 공간에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시간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소년과 탁구를 하고 거기서 이겨서 마을로 왔을 때 이건 다른 장소로 왔다기보단 왠지 다른 시간으로 왔다는 느낌을 우리한테 불러일으키죠.
 
비간은 여기에서 좀 더 대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마치 정의하듯이 얘기했습니다. 철학자라도 된 듯이. ‘나에게 3D는 메모리 이미지, 기억 이미지였다.’ 마치 들뢰즈가 이미지들을 분리해낼 때 운동 이미지, 시간 이미지 혹은 스타일라이제이션을 계속 이야기하는, 아마도 틀림없이 이 어린 친구가 들뢰즈를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표현을 썼겠죠. 저에게 3D는 메모리 이미지, 정확하게 그 말을 했었어요. 영화제에서 비간을 만났는데 중국에서만 공부했는데 중국에서 공부한 중국 감독답지 않게 영어를 굉장히 잘합니다. 인터뷰를 영어로도 할 수 있는 사람인데요. 그래서 캐나다 영화 비평가랑 인터뷰했었을 때 통역사 없이 영어로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메모리 이미지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썼습니다. 장소에서 이중으로 보이는 사물들을 기억 속에 남겨 놓은 흔적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따분하게 느껴지신다면 기술적인 이야기도 몇 가지 더 해보겠습니다. 비간은 처음으로 3D를 찍었으니까, 맨 처음에는 작은 3D 카메라로 테스트를 했답니다. 왜냐하면, 너무 먼 거리를 쫓아다니니까 큰 카메라로 테스트하면 촬영감독이 견디기가 힘들었다는 겁니다. 스테디 캠으로 찍었지만, 이 스테디 캠을 들고 쫓아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작은 3D 카메라를 선택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장면이 다 밤 장면이다 보니까 로우키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우키 촬영을 하면 작은 카메라는 이 카메라의 로우키 모드를 다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노출이 부족한 상태가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노출로는 3D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카메라를 결국 교체하는 상황이 벌어졌답니다. 게다가 3D 카메라가 아닌 일반 카메라의 경우에는 반대로 고정 쇼트에서는 카메라를 픽스시켜 놓으니까 효과적이었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 이 출렁거리는, 왜냐하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이게 너무 심해서 이 경우에는 스테디 캠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긴 토론이 있었답니다. 비간에게 3D를 찍으며 가장 참고한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제일 궁금한 건 58분 동안 롱테이크를 어떻게 찍었을까 아닙니까? 이때 역시 그러면 그렇지!’ 끄덕이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3D 촬영을 하는 데 참고 텍스트는 영화 <그래비티>였답니다. <그래비티>(2013) 딱 처음 시작했을 때에 28분 동안 허공에 떠서 카메라가 돌아다니는 원테이크 원쇼트 롱테이크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메이킹 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걸 롱테이크로 안 찍었습니다. 컷을 다 쪼개서 찍은 다음에 나중에 롱테이크처럼 보이도록 착각하게 붙여놓은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물론 여러 가지 CG 효과도 있었고 배경이 까만색이니까 우주 공간을 지나가는 장면을 붙이기가 편했겠죠. 이런 것들을 참고해서 이 롱테이크 장면은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본 건 원쇼트 58분이었지만 실제 촬영한 건 다 일일이 쪼개서 영화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지구 최후의 밤>도 이 방법을 선택했답니다. 맨 처음에 세팅을 다 해놓은 다음, 아이를 만나 탁구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이 마을까지가 다 세트라고 합니다. 이 세트에 배우들 없이 전체의 카메라의 동선들의 움직임을 몇 달에 걸쳐서 세트를 고치고 고치면서 3번에 걸쳐서 완전히 풀 테스트 촬영을 했답니다. 그러고 나서 배우들을 다 불러다 놓고 배우와 엑스트라들을 배치하고 동일한 동선으로 쪼개서 찍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5번을 찍었답니다. 그리고 이걸 다 끊어서 찍었지만 미세한 동작들 때문에 섞어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쓰면 통째로 다 쓸지 말지 결정했어야 했지, 앞 컷이 좋았으니 이건 여기 쓰고 저기 쓰고 가 안됐답니다. 우리가 오늘 본건 다섯 번째 파이널 슈팅이 이 영화에서 사용한 슈팅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간이 이렇게 이야기하기를 자기 마음속에서 본인에게 가장 좋은 3D 미장센 모델 연출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안이었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달리 비간이 생각한 이안의 영화 중 최고의 3D 영화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빌리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 Billy Lynn's Long Halftime Walk>(2016)라는 영화를 3D 촬영의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영화를 못 봐서 제가 더 설명하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지만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 영화를 보신 분이 있다면 저한테 마음껏 자랑해 주십시오. 진짜 부러워할 것입니다.
 
<지구 최후의 밤>은 촬영감독이 모두 3명이었습니다. 2D 촬영을 했던 한 사람은 야오홍이(Hung-i Yao)이라는 대만 촬영감독이 2D의 절반을 찍었고 문제는 이 절반에 자기의 NG가 너무 많았답니다. 그래서 촬영이 굉장히 길어지는 바람에 일정이 맞지 않아 먼저 현장을 떠났어야 했었고, 그다음 동경송(Jingsong Dong)이라는 촬영감독이 이어서 나머지 2D를 다 찍었고, 3D를 찍은 것은 프랑스 촬영감독인 다비드 쉬잘레 (David Chizallet)가 찍었답니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촬영감독이라서 이 사람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딱히 눈에 띄는 3D 촬영 필모그래피는 없습니다. 왜 선택했는지는 제가 비간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기 전에는 선택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다음 아마도 영화를 열심히 보시는 씨네필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지구 최후의 밤>을 보면서 이 영화가 모델로 삼은 영화가 또 어떤 것이 있는지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비간이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더 찍은 것이다.’ 했던 영화는, 영화에서 탕웨이가 12역인지 21역인지 아주 애매하게 나오죠. 비간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참고했던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Vertigo>(1958)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현기증>에서 영화 앞에 그 주디가 가짜 매들린으로 나와서 이 남자를 완전히 홀리죠. 그리고 나서는 종탑에서 떨어져 죽은 것 같은 퍼포먼스를 연출해내지만 이 거짓된 행동 속에서 이 여자가 그 과정에서 스카티 퍼거슨이라는 남자에게 사랑에 빠져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여 매들린이 되돌아온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해내죠. 무엇보다도 이 <현기증>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는 탕웨이가 12역을 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두 사람이 <현기증>처럼 하나가 가짜이고 다른 하나가 진짜인 매들린과 주디의 그런 12역인 것은 아닙니다. <지구 최후의 밤>에서 완치원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 서로 다른 두 여자를 뤄홍우는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 속에서 다른 하나는 꿈속에서. 물론 탕웨이가 12역을 하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은 겹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지구 최후의 밤을 본 걸 총동원해서 생각해보십시오. 핵심을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이제 꿈이 진실을 본 것인지 아니면 꿈이 기억을 왜곡시켜서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 것인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비간은 이것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2개의 장면, <현기증>에서 주디가 매들린이 되어서 나타날 때의 방을 온통 초록색 조명으로 가득 채웁니다. 초록색, 말하자면 욕망의 색깔, 정신분열증의 색깔, 분리되는 색깔, 모노크롬과 같은 그 초록색. 우리는 앞부분에서 통로를 걸어갈 때 초록 지붕 대신 어떻게 했습니까, 탕웨이한테 초록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서는 그 초록색 옷을 입힌 이 탕웨이가 기억 속에서 나타난 건지 기억 속에서 왜곡되어 나타난 어떤 대상인지 실제 존재하는 대상인지 분명치 않게 만들어 놨습니다. 이 초록색은 정신적인 것인지 심리적인 것인지 병리적인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두 번째, 3D 영화를 보는 꿈속에서 뤄홍우와 여자는 서로 안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갑자기 카메라가 360도로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현기증>에서 똑같은 걸 봤습니다. 스카티 퍼거슨이 주디가 매들린의 복장을 하고 나타났었을 때 말하자면 가짜 매들린을 안았을 때 이 가짜와 진짜 사이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듯이 카메라가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하게는 카메라가 회전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선반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그 선반을 돌린 상태로 히치콕은 그 장면을 찍었습니다.
 
비간은 <지구 최후의 밤>에서 추억 속 욕망의 대상과 꿈속 욕망의 대상 중에서 어느 쪽이 진짜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주십시오. 카메라가 돌아다니다 우리가 맨 마지막 장면에서 무엇을 보나요? 불꽃놀이 용도로 쓰는 막대기가 꽂혀있었을 때 거기까지 다가갔는데 맞은편 거울에서 또 반짝반짝 눈꽃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질문은 추억 속의 욕망의 대상과 꿈속 욕망의 대상 중에서 당신을 뭘 선택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어느 쪽이 진짜냐는 대답을 구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어떤 영화는 질문에서 멈추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간은 인터뷰의 맨 마지막에서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자기는 3D에 아무 관심이 없답니다. <지구 최후의 밤>에서 3D를 쓴 까닭은 이것이 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촬영 방법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라고 합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비간은 3번째 영화에서도 또다시 이 이야기를 절반으로 쪼개낸 다음 나머지 절반은 또 원쇼트로 쪼갤 겁니다. 저는 비간이 다음번에 무슨 촬영 방법으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우리들로 하여금 그 모호한 기억과 꿈 혹은 추억과 환상 속에서 길 잃게 만들지 지금부터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모호한 영화가 개봉되면 한 번 더 보고 여러분들의 기억과 대결해보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은 무주산골영화제를 즐겨 주십시오. 

 

 

 

 

 

CopyRight Since 2016-2020 MJFF.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