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이후 나온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주로 숨어 살던 여성 피해자들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가해자와 당당히 맞서는 과정을 담아내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김정은 감독의 장편데뷔작 <경아의 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성관계 동영상 유출 문제를 개인의 투쟁에서 가족, 특히 엄마와의 관계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당사자뿐 아니라 엄마의 시선을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딸의 성관계 동영상을 받아든 엄마 경아의 복잡한 심정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말이다. 그러나 온갖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엄마는 홧김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딸에게 내뱉는다. 말은 순식간에 칼이 되어 딸을 무너뜨리고, 엄마와 딸의 관계는 박살이 난다. 잘못된 말은 이렇게 쉽게 관계를 끝장내버린다. 영화는 동영상 유출 사건을 중심에 두고, 엄마와 딸, 두 개의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러면서 동영상 유출에 대응하고 냉혹한 현실에 맞서는 경아의 미세한 감정 변화와 자신의 말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딸과의 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노력을 함께 담아낸다.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여성이 서로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고 말하며, 화해하고 연대하는 과정은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커다란 문제를 안고 사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