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_산골프로그래머의 마지막 편지

  ​2022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진짜 마지막 편지 무주라는 이름의 산골 소도시에서 영화와 영화제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동료들과 10년째 이 일을 해왔다. 늘 보는 몇 사람을 빼고 일을 나누거나 상의할 사람 하나 없이 영화 또는 영화제와 관련된 오만가지 일들을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자기 의심과 자기 확신, 마음은 끊임없이 이 두 단어 사이를 오간다. 두 단어는 항상 느슨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가끔씩 어느 한쪽이 힘이 세져 그사이의 긴장이 끊어질 듯 팽팽해지면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영화제가 임박할 때마다 내가 여기서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이 산골에서 영화映畫를 붙잡고 이러고 있는지 자문하곤 했는데, 팬데믹 2년간은 그 질문의 크기가 더 크게 느껴졌다. 주로 영화를 담당했던 내가 이 정도였으니, 만만치 않은 현실을 감당해야 했던 동료들의 어려움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힘들지 않은 영화제가 없다고 해도 이 산골에서 영화와 영화제로 버틴 지난 10년의 시간은, 시간이 흘렀다고 웃으면서 추억할 수만은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열 번째 영화제를 무사히 마쳤지만, 10년을 버텼다는 대견한 마음도 별로 없고, 10주년을 맞이했다는 흥분이나 설렘 같은 것도 없다. 그저 동료들과 조금 덜 고생하면서, 올해 영화제를 잘 마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건 바람일 뿐이었다. 영화제가 끝나면 조용히 혼자서 자축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10회 영화제를 마치고 나니, 비로소 떠오는 얼굴들이 있다. 이 긴 시간을 함께했던 과거의 동료들이다. 여전히 연락이 닿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몇몇은 영화제 기간 잠시 만나기도 했다. 우리들은 힘을 합쳐 그 어려웠던 시간들을 함께 통과했다. 하지만 힘들게 만났으므로, 서로를 얻기도 했지만 서로를 잃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난 9년은 보람 있는 시간이었던 만큼 아픈 시간이기도 했다. 여기에 그 동료들의 이름을 적어둔다. 그동안 영화제 공식 책자에 적어두었던 이름들이다. 간접적으로 일한 사람들까지 모두 적기엔 내 기억이 정확하지 못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올해 영화제를 찾은 여러분들이 내년에도 기필코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던 지금의 무주산골영화제는 이 이름들과 여기에 적히지 않은 많은 이들이 함께 만들어 온 것이고, 여러분들도 잠시 시간을 내어 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노고를 잠시 기억해주면 좋겠다.   ○ 제1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김건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김현태 / 프로그램팀_박연실(팀장), 이슬비 / 홍보마케팅팀_신동환(팀장), 김가영 / 기획운영팀_이정우(팀장) / 포스터_page9 (구민재) / F.I(Fesitival Identity)_page9 (구민재)○ 제2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김건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김현태 / 프로그램팀_박연실(팀장), 정원균 / 홍보마케팅팀_김상미(팀장), 이지연 / 기획운영팀_이정우(팀장) / 코디네이터_유현주(개폐막), 이정진(초청) / 기술팀_김형준, 임형택, 이보람 / 포스터_김중석, page9○ 제3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기획운영팀_김경진, 김형준, 박용현, 이지연 / 프로그램홍보팀_김구슬, 이영인, 이진선 / 코디네이터_이정우(개폐막), 이슬비(초청) / 기술팀_이보람, 임명근 / 포스터_이지연 ○ 제4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기획운영팀_김형준, 배설화, 오수민, 조세진 / 프로그램홍보팀_김구슬, 이상규, 이은빈, 이진선 / 코디네이터_이정우(개막) / 포스터_박디(박영준), page9○ 제5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사업마케팅팀_고영웅 / 프로그램팀_한아름 / 기획운영팀_신별하, 박용현 / 홍보팀_오수민 / 초청팀_전유현 / 기술팀_김형준 / 코디네이터_윤신혜(개폐막) / 디자이너_이세정 / 회계팀_김지선 / 포스터_AE SHOONG(애슝), page9   ○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기획운영팀_고영웅, 이남혁 / 홍보마케팅팀_황혜성, 김희진, 김태이 / 프로그램팀_한아름 / 초청팀_김용희 / 디자이너_이세정 / 회계팀_최현희 / 포스터_연필로 명상하기○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기획운영팀_고영웅, 이정준 / 사업마케팅팀_황혜성, 김태이, 김예림 / 아트디렉터_서하나 / 프로그램홍보팀_김희진, 김용희, 문송아, 최기쁨 / 회계팀_최현희 / 포스터_김효은 (할로 프라우킴 hallo fraukim) ○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사업마케팅실_황혜성, 김태이기획운영팀_고영웅, 김용희, 문수정, 최은경, 채상훈, 임민혁 / 프로그램팀_김도희 / 미술감독_서하나 / 회계팀_최현희 / 코디네이터_김형준(기술), 이혜주(홍보), 정하경(해외 프로그램)최성우(출판) / 포스터_김영준 ○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사업마케팅실_황혜성, 김용희기획운영팀_고영웅, 김혜린, 채상훈 / 프로그램팀_김태이, 한지영 / 미술감독_서하나 / 회계팀_최현희 / 코디네이터_김형준, 이혜주, 임민혁, 정하경, 최성우 / 포스터_김영준 ○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집행위원장_유기하 / 프로그래머_조지훈 / 사무국장_신동환 / 기획실_황혜성, 최영, 김송희, 이예지 / 홍보마케팅팀_김용희, 구상현, 서윤아 / 사업운영팀_고영웅, 채상훈, 이가람 / 프로그램팀_김태이, 기연주 / 회계팀_최현희 / 코디네이터_김형준(기술), 이혜주(홍보), 정하경(해외 프로그램), 김희진(출판), SEI(디자인) / 포스터_어지혜(스팍스에디션) / F.I(Fesitival Identity)_김영준 단언컨대, 이 작은 영화제는 처음부터 오직 우리들의 힘으로 꾸려온 영화제였다. 늘 돈이 부족했지만 한 번도 예산은 쉽게 늘어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들이 고생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잘 안다고 항상 말했다. 그러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일에 충고하고 싶어 했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묻지 않고 모르는 척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정작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았고, 우리가 원하는 걸 좀처럼 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영화제는 없어져도 진작에 없어졌어야 할 영화제였다. 늘공(직업 공무원)과 어공(선출직 공무원)들이 무주군민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서울시만 한 면적에 단 2만 3천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그나마도 절반 이상은 노령인구인 산골의 작은 소도시에서 군민들을 위해 이 큰돈을 들여 영화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그걸 원한다면 영화제 예산을 가져다가 군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게 낫다고. 영화제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낫다고. 그러니까 이 영화제는 무주군의 많은 축제들 중에서 영화를 매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젊은 관객들을 무주에 오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해달라고 앵무새처럼 말했다. 가끔은 라떼를 한 사발씩 마신 자칭 전문가들이 영화제가 어떻고, 개막작이 어떻고, 프로그램이 어떻고, 기획이 어떻고, 운영이 어떻고, 디자인이 어떻다고 별 도움 안 되는 조언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기운 빠진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도 알고 있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점점 더 많은 젊은 관객들이 찾는 젊은 영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외지의 자식들이 명절이 아닌데도 영화제 기간이 되면 무주에 오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난생처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았다는 무주 군민도 생겨났다. 무주의 젊은 공무원들과 청년들은 영화제를 기다린다고 했고, 무주에 오는 젊은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영화제에 오는 주민들도 많다고 했다. 영화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애정하는 주민들도 점점 많아졌다. 영화제가 개최되면 무주 읍내와 무주군의 주요 공간들은 젊은 관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졌고, 그들의 열기로 들썩거렸다. 재료가 떨어져 저녁 장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식당과 페스트푸드점들에 대한 소식도 들려왔다. 볼 때마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던 먹거리 부스 운영자들도 말과는 달리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므로 매년 영화제가 끝날 때마다 내년을 걱정했던 이 영화제를 결국 살려낸 건 영화제를 꾸려온 우리가 아니라 관객 여러분이었다. 여러분들은 10년을 한결같이 이 작은 영화제를 끊임없이 찾아주었다. 지난 10년간 관객이 적을 때도 있었지만 관객들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어디선가 나타나 영화제 공간 곳곳을 채워주고,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즐겨주었다. 올해에도 비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분명히 영화제 전까지 비 예보는 없었다. 그러나 3일간의 찌는 듯한 더위는 비를 몰고 오고야 말았고, 무주한 날씨가 시작되었다. 일요일이 되자 비가 쏟아졌다. 야외 행사가 많았기 때문에 걱정했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로 취소된 단 한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 관객이 없어 취소한 영화상영과 행사는 없었다. 여러분은 비바람을 맞아가며 기꺼이 영화와 공연을 즐겨주었고, SNS에 공지된 변경된 장소를 찾아와 발 디딜 틈 없이 행사장을 가득 메워주었으며,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고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주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뛰어다니면서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새삼스레 여러분과의 옛 기억을 떠올렸다. 여러분들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변함없이 영화제를 찾아주었다. 메르스를 뚫고 영화제에 와주었고, 온라인으로 영화제를 해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온라인 생방송을 켜놓고 영화제에 참여해 주었으며, 코로나로 관객 수의 제한을 두었을 때에도 무주산골영화제를 암표가 있는 영화제로 만들어 유명세를 타게 해주었다.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는 분명 여러분의 힘으로 만들어낸 영화제였다. 올해 영화제를 찾았던 모두가 말했듯,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어디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료화를 시도한 첫해였지만 주말 실내상영관의 좌석점유율은 70%에 달했다. 우리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등나무운동장을 가득 채운 여러분들은 어떤 소란도 사고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행사에 참여해주었다.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했지만 평온했다. 무주에 사는 사람들은 등나무운동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도 그 흔한 고성 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주 읍내에서 30분은 가야 하는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덕유산의 야외상영장은 그 새까만 밤에 전국에서 모여든 수도 없이 많은 관객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어둠을 뚫고 밤새도록 덕유산을 오르내렸지만, 어떤 사건·사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떤 트친의 말대로 이쯤 되면 이건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작은 영화제는 이렇게 여러분들의 찐한 우정과 과분한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다. 영화제는 관객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하지만, 영화인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하다. 영화제는 영화를 만들고 유통하는 분들의 도움 없이는 단 한 편의 영화도 틀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작은 영화제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건 그동안 한결같이 빈손으로 시작했던 이 작은 영화제에 훌륭한 영화를 상영하도록 허락해주고, 영화와 함께 무주에 와서 관객과 함께 멋진 시간들을 만들어 준 감독, 프로듀서, 배우 등 모든 영화인들 덕분이기도 했다. 올해 상영한 총 31개국 110편의 영화 중 개막식과 개막작을 제외하고 22회의 관객과의 대화, 7회의 상영 전 무대인사, 9회의 토킹시네마, 총 2회의 영화 관련 야외토크가 이루어졌다. 총 40회의 행사를 위해 4일간 130명이 넘는 감독와 배우 및 여러 영화전문가들이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과 만나고자 기꺼운 마음으로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아주었다. 무주를 찾은 영화제작, 배급사 관계자들과 각 상영작 제작스태프, 관객이벤트에 참여한 공연팀의 수를 합하면 그 수는 200명, 아니 300명이 훨씬 넘어갈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좋은 영화를 상영하게 해주고, 무주까지 와서 관객 여러분과 함께 호흡해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제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영역에 진입하게 되었다. 영화제 전에 첫 편지에서 이미 예고했지만 진짜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난 영화제에서만 22년을 일했다. 제1회 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를 했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1년 10개월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10년을 보냈다. 그동안 국내와 해외에서 열리는 수없이 많은 영화제를 다녔고, 수많은 영화제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영화제들 중에서 관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아져서 영화제 규모를 줄일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인 영화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들어본 적도 없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만들어낸 이 무주산골영화제는 지금 한국 영화제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영화제의 규모를 더 이상 키울 생각이 없다. 10회를 준비하면서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했다. 내년엔 연휴가 없어 자연스럽게 올해보다 프로그램 규모를 자연스럽게 줄여야 하겠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이제 영화제의 규모를 드라마틱하게 줄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지금부터 우리는 진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늘 어려웠고 이 정도의 어려움은 차라리 행복한 고민이다. 우리는 앞으로 무주산골영화제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방패 삼아 최선을 다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더 좋은 영화들을 엄선하고, 여러분들을 위한 더 새롭고 트렌디한 영화제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금까지 만들어온 프로그램을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낼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와서 아무 문제 없이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갈 수 있는 운영방식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질을 두고 벌이는 논쟁과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양은 눈에 보이지만 질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양이 중요한 사람들의 불필요한 요구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있으므로 우리는 결국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영화제는 일 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영화를 가지고 노는 축제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제들이 있지만 무주산골영화제처럼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올 수 있는, 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단 4대 밖에 없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없다. 그래서 영화제를 만들어온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영화와 영화제를 위해 이 산골 무주에 오는 건 일종의 도전이고 모험이다. 자차가 없는 뚜벅이 관객, 거기에 혼자 떠나온 관객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도전과 모험을 ‘여행’이라고 부르건 ‘소풍’이라고 부르건 또는 ‘낭만’이라고 부르건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산골 무주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굳이 그 많은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고 무주의 극장 같지 않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추위를 견뎌가며 야외상영장에 돗자리를 펴고 공연을 보고,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보다 더 나은 일상을 살기 위해서고 그럴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올해 무주산골영화제를 다녀간 모든 여러분들은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얻은 낭만과 추억, 그날의 온도와 습도,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하며, 누구보다 멋지게,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그게 여러분이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은 이유였으니까 여러분은 꼭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다가 일 년쯤 지나 다시 일상에 지쳐갈 때쯤, 영화제 소식이 들려오면 그때 영화를 따라 다시 산골 무주를 찾아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 잠시 잊고 있던 낭만과 영화가 주는 위로와 위안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난 늘 무주산골영화제가 여러분들의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친구는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반갑고, 수다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편하다. 그저 괜찮냐는 말로도 온갖 안부 인사를 대신할 수 있다. 힘들면 잠시 기댈 수 있고, 슬플 땐 조용히 지켜봐 주고, 기쁠 땐 미소로 그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그런 친구의 마음으로 같은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다시 내년을 준비하겠다. 분명히 내년엔 올해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당연히 더 멋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테니까 말이다. 이제 이번 편지를 마지막으로 7년간 계속해온 ‘산골프로그래머의 편지’를 접으려고 한다. 징징거리고 싶지 않았지만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많았고, 힘든 척하고 싶지 않았지만 팬데믹 기간에는 특히 그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여러분들 상상하며 썼던 그간의 편지에는 비교적 솔직한 나의 마음과 영화제 내부의 온도와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었고, 이 편지를 통해 나와 동료들이 함께 준비한 영화제와 프로그램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무주산골영화제는 10회를 맞았고, 그 영화제와 함께 한 우리들도 10살을 더 먹었다. 나이가 들면 말은 줄이고, 귀와 지갑은 열어야 하며, 엉덩이는 가볍게 해야 하는 법이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힘들다고 징징거리던 산골프로그래머는 동료들과 함께 지금보다 훨씬 다듬어진 담백하고 멋진 프로그램으로 편지가 아닌 영화제 현장에서 무주를 다시 찾을 여러분들과 만나려고 한다. 얼마나 여러분들과 더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다. 언젠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선정하지 못하고, 여러분이 무주에 오고 싶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운 때가 오면 미련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이 영화제를 떠날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몇 명이나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편지를 읽어준 여러분께 많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 덕분에 많이 배웠고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 내년엔 여러분만큼 멋진 모습으로 동료들과 함께 돌아오겠다. 여러분과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2022년 6월 15일산골프로그래머 드림  

2022_산골프로그래머의 네 번째 편지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네 번째 편지​작년 영화제가 끝나고 하반기에 본격적인 유료화 도입을 최종 결정하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과연 지금의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이 유료화에 적합한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9년간 꾸준히 다듬어 온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개봉영화 중심의 무료로 즐기는 영화소풍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물론, 2018년 이후 “무주 셀렉트: 동시대 시네아스트”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넥스트 액터”, “키즈스테이지”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할 때마다 유료화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긴 했지만, 이 프로그램만으로 유료화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9년간 유지해온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 방향을 유료화 때문에 완전히 바꿀 수도 없었다.  유료화는 단순히 관객들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매가 열린다는 뜻이고, 어떤 영화가 얼마나 예매되었는지, 대략 얼마만큼의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보러 무주에 올지 영화인도, 여러분도 모두가 미리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매율은 실제 영화제의 분위기와 영화제에 올 관객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예매가 열렸는데 예매를 하지 않은 영화제에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리 없었다. 2019년에 했어도 부담이 컸겠지만, 팬데믹 2년을 겪은 직후라 부담이 더 컸다. ​ 그래서 현재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관객들이 기꺼이 먼 곳까지 와서 비용을 지불하고 참여할 만한, 예매를 주도해줄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더 필요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미 25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영화제에서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 같은 건 없다. 해볼 만한 건 거의 해봤다는 얘기다. 지금의 한국의 큰 영화제들은 모두 이란성 쌍둥이처럼 이름만 다른 비슷한 프로그램을 다수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 영화인과 배우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전부 모객을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이라...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회의를 하면서, 농담처럼, 팬데믹이 끝나면 영화제 기간에 하루종일 영화에 관한 토크만 하는 상영관을 하나 운영해볼까 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관객과의 대화를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하는 걸 경험해보고 현타가 와서 했던 말이었다. 아이디어가 던져졌고, 새로운 토크 프로그램에 대한 방향이 잡기 시작했다. ​ 하지만, 무주산골영화제는 이미 ‘산골토크’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상영작 중에 해설이 필요한 영화를 골라 영화평론가를 초대하여 듣는 일종의 1인 영화해설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평론가는 정해져 있었고, 이들은 항상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모객을 더 하려면 무조건 최신작을 선택해야 했다. ‘산골토크’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될 수 없었다.  ​​ 전문성, 확장성과 보편성을 키워드로 세 가지 기획 포인트를 잡았다. (1) 최신작과 영화해설 프로그램의 압박에서 벗어나 최신 영화계의 트랜드를 반영한 주제, 또는 주제에 맞는 전문가로부터 시작하는 토크 프로그램. (2) 1인 영화해설이 아닌 2인 이상의 영화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다, 대담 또는 토크 프로그램. (3) 씨네필 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관심을 가질만한 토크 프로그램.  이런 이유와 기획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올해 새롭게 시작한 “토킹 시네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한 가지 후보가 더 있었지만, 결국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의 <토킹 픽쳐 A Talking Picture>(2003)에서 따왔다. 1908년에 태어나 105세까지 영화를 만들다가, 106세가 되던 2015년 4월에 세상을 떠난 포르투갈 출신의 거장이다. 사실, ‘시네마’라는 단어를 꼭 써야 하나를 고민했다. 하지만 ‘시네마’의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 ‘시네마’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 이름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토킹’과 ‘시네마’ 두 단어로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단번에 담아낼 수 있었다. 다소 올드해 보이는 게 문제였지만, 이건 프로그램 구성과 내용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상을 마치고도 이걸 진짜로 해야 하나 끝까지 망설였다. 사무실 동료들은 기존의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잘 못 느끼는 눈치였고, 이게 왜 필요한지도 공감을 잘못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도 이 시도는 완전히 기획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고, 사람을 먼저 섭외하고 세부적인 부분을 다듬어야 하는 일이라 눈앞에 고생길이 빤히 보였다. 사실, 담당자 하나와 혼자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입장에선 절대 시작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거 하나는 꼭 필요했다.  이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첫 메일을 보낸 지 딱 4주 만에 9개의 주제 아래 25명의 영화 관련 전문가들의 섭외를 마무리했다. 이와 함께 그들이 선정한 장편영화 7편과 단편영화 3편, 왓챠 오리지널 2편의 상영도 확정 지었다.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있었고, 실수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여튼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공개하고 나니 누군가는 ‘영혼을 갈아 넣은’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진행하면서도 다소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유사품이 많은 이런 프로그램은 딱 한 번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이 정도의 구성이어야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확실하게 이해시킬 수 있고,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기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유료화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사실 이 고민은 팬데믹 이후 영화제에 대한 고민과도 맞물려 있다. 부산, 전주, 부천 등 국제영화제와 달리 지자체의 힘이 약하고, 예산구조가 취약한 무주처럼 작은 영화제의 미래는 사실 불투명하다. 매년이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영화보다 영화 아닌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많다.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싸워야 할 것들도 많고, 영화로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1도 관심 없는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이 정도의 프로그램을 오픈하고도 예매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유지하기 어려울 거고, 더 나아가 산골 무주에서 ‘영화제’라는 행사는 미래가 불투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혹시나 했던 내 불안한 예상은 빗나갔고,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토킹 시네마 프로그램을 선택해주었다. 현장에서도 여러분의 호응이 있다면 내년에도 계속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올해의 ‘토킹 시네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프로그램 하나만을 꼽으라면, 바로 김동원 감독과 김옥영 대표가 김동원 감독의 신작 을 두고 나눌 대담 프로그램이다. 알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두 분은 한국 다큐멘터리계의 산증인이며 마스터이고, 다큐멘터리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들이다. 이 두 분을 빼고 한국 다큐멘터리를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두 분이 김동원 감독님의 을 두고 만나게 된다. 내가 관객인데, 올해 토킹 시네마 중 딱 하나만 참석할 수 있다면, (이런 말 하면 다른 23명의 전문가분들의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 이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 같다. 두 분이 대담하는 것을 들을 특별한 기회이기도 하고, 그만큼 마음의 공을 들여 준비한 자리기도 하다. 여러분들을 적극적인 참여를 권해본다.​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토킹 시네마 안내 - https://c11.kr/zyn6​] 

2022_ 산골프로그래머의 세 번째 편지

  2022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세 번째 편지​ 내 인생 첫 영화제에서 맡았던 주 업무는 영화제의 공식 책자인 '티켓 카탈로그’와 ‘메인 카탈로그’를 출판하는 일이었다. ‘티켓 카탈로그’는 상영작에 대한 정보를 담아 예매를 돕는, 예매 직전 무작위로 배포되는 작은 책자인데, 요즘은 온라인의 비중이 커지면서, 갈수록 종이로 된 ‘티켓 카탈로그’의 역할이 거의 없어졌다. 반면, 당해 영화제의 프로그램 및 관련 이벤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어 영화제의 히스토리북 또는 아카이브의 역할을 겸하기도 하는 ‘메인 카탈로그’는 흔히 ‘프로그램북’이라고 불린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영화제마다 형태와 구성은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이런 공식 ‘프로그램북’을 매년 발간한다.당시 나는 출판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냥 책도 아니고 200편이 넘는 상영작의 정보가 집약되어있는, 국문과 영문이 함께 있는 책을 한 권도 아니고 두 권이나 만들면서, 정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일을 단기간에 해내야 했다. 이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일하기 전까지 약 10여 년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램북’을 비롯한 자료집, 영화전문서적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영화제 관련 책을 매년 만들어왔다. 그런데 2013년 무주산골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영화제의 새로운 공식 책자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 볼까 고민하던 중, 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램북’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관객들은 영화제가 매년 발간하는 공식 프로그램북을 얼마나 읽을까? 영화제가 끝나고도 프로그램북을 보관하고 읽는 관객은 몇 명이나 될까?사실, 영화제의 모든 상영작 정보가 담겨있는 공식 ‘프로그램북’은, 주로 상영작에 대한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영화제 전과 영화제 기간에는 읽어도, 영화제가 끝나면 다시 펼쳐 볼 일이 거의 없는 책이다.그래서 2013년 첫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새로운 ‘프로그램북’을 구상했을 때, 관객들이 조금 더 책을 많이 읽도록 유도할 수 있는, 기존의 영화제와는 조금 다른 ‘프로그램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1회부터 9회까지 만들어온 ‘영화소풍을 위한 안내서’라고 이름 붙인 무주산골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램북’은 기존 ‘프로그램북’에 대한 이런 문제의식과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인원으로 출판을 감당해야 했던 무주산골영화제의 물리적 여건을 동시에 감안하여 도출해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올해 10회를 맞이하여 지난 9년간 유지해온 비슷한 콘셉트의 책자에서 벗어나 다시 기존의 영화제와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북을 선보이게 되었다. 디자인이 바뀌고, 판형과 종이, 특히 책의 페이지 수가 많이 달라졌지만, 작품별 리뷰의 양은 여러 가지 이유로 늘리는 것이 불가능했고, 이미 개봉한 영화가 많은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 특성상 굳이 늘려야 할 이유도 못 느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그동안 무주산골영화제가 선보였던 ‘영화소풍을 위한 안내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왕 바꾼 김에 10회를 맞아 새로 만드는 ‘프로그램북’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1차 목표는 “예쁜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였다. 그래서 기존의 구성을 유지하되, 형식적인 상영작 리뷰에서 벗어나 영화제가 정성껏 준비한 상영작과 관객 이벤트를 포함한 영화제 전체 프로그램에 대해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읽을만한, 비교적 가벼운 읽을거리들을 만들어 넣어보기로 했다.상영작을 다양한 방식으로 2~4편씩 묶어 대략의 주제를 정한 다음, 필자들에게 청탁을 하면서 요청했던 건 딱 세 가지였다. 첫째, 여성잡지나 패션잡지에 실릴 만한 가벼운 톤의 영화 에세이. 원고지 10매 또는 15매 내외의 분량. 그리고 글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지만, 글을 읽고 나면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글이면 좋겠다.    얼핏 쉬워 보일 수 있지만, 필자 입장에선 절대 쉽지 않은 청탁 조건이었다. 하지만 총 14명의 한국의 주요 영화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은 이 난감한 청탁을 기꺼이 맡아 주었다. 올해 프로그램북의 마지막에 들어가게 된 ‘이슈&에세이’라는 이름의 코너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 이 코너에는 30여 편의 상영작을 다양한 주제로 묶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 에세이 13개와 매거진를 주제로 한 올해 산골책방의 콘셉트에 맞춰 동시대 잡지 트랜드에 대한 에세이가 함께 실려있다.현재 각자의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주요 영화 필진들이 참여한, 가볍지만 깊고, 통찰력이 돋보이는 이 14개의 글들은, 산골 무주를 찾아온 관객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영화제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영화를 통해 우리의 삶과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좋은 읽을거리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앞으로도 무주산골영화제 공식 프로그램북의 변화는 계속될 테지만,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이슈&에세이’ 코너는, 상영작뿐 아니라 영화제 전체와 무주와 관련된 내용까지 주제를 확장하고,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영역의 좋은 필자들을 발굴하여, 전체적인 기획 방향과 원고 청탁 방향을 더 세밀하게 다듬어, 이 코너가 무주산골영화제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들을 위한 특별하고 독보적인 읽을거리가 되도록 계속 노력해볼 생각이다.‘이슈&에세이’에 실린 글들은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받을 수 있는 공식 프로그램북 PDF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영화제 기간에 현장에서 배포되는 공식 프로그램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무주에 못 오는 분들을 위한 온라인 공개는 영화제 이후에 적당한 시기를 잡아 진행될 것이다.  관객 여러분들 중 올해 무주에 오시는 분이라면, 영화제 기간 무료로 배포되는 프로그램북을 꼭 받아, 상영작 및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와 함께 ‘이슈&에세이’ 코너도 꼭, 반드시 챙겨서 읽어봐 주면 좋겠다. 전체 14개 글의 필자와 원고 제목, 원고별로 다루는 상영작들은 아래와 같다. ○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필름이 가지는 의미 (글.이용철) - <시네마 천국>, <원 세컨드>, <오마주> ○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본 적 있는가? (글.정지혜) -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 덕질은 나의 힘, 덕후들의 다큐멘터리 (글.정민아)  - <성덕>,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여행자에 관한 두 편의 영화 (글.김성욱) - <베르히만 아일랜드>, <썬다운> ○ 여름과 죽음 (글.김소희) - <강변의 무코리타>, <동백정원> ○ 숨 막히는 에너지, 폭발하는 침묵 (글.송경원) - <매스>, <더 노비스> ○ 피로한 여성과 정치적 풍경 사이 (글.손시내) - <풀타임>, <배드 럭 뱅잉> ○ 점액질로 채워진 집과 보살핌이 남아있는 집 (글.박인호) - <라이트 하우스>, <가가린> ○ 동물영화의 시선 (글.김병규) - <카우>, <군다> ○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건 (글.민용준) - <비포 3부작>, <보이후드> ○ 새롭게 만들어가는 ‘집’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글.김세희)     - <나의 집은 어디인가>, <항구의 니쿠코짱>, <캘러미티 제인> ○ <원스>,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가 소환하는 그/그녀와의 추억 (글.허남웅) ○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글.장성란)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디어 코파일럿> ○ 잡지는 망했다 그리고 잡지는 살았다 (글.김도훈)  

2022_ 산골프로그래머의 두 번째 편지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2022년 두 번째 편지 무주산골영화제가 다시 영화를 만들었다.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진 않겠지만,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영화인데, 이번엔 장편 다큐멘터리다. 제목은 <무주>이고, <노후 대책 없다>와 <셀프-포트레이트2020>의 이동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무주산골영화제는 2018년경부터 무주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형식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꾸준히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 첫 결과물은 윤재호 감독이 연출한 관객 참여형 단편영화 <순간>이었다. 유튜브에 하루 동안 올라온 영상을 편집하여 완성한 케빈 맥도널드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라이프 인 더 데이>(2011)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2019년 무주산골영화제를 방문한 관객들이 영화제 기간 직접 촬영한 200여 개의 영상 중 윤재호 감독이 직접 선택한 12개의 영상을 기반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2020년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식에서 첫 공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있는 작품으로, 감독의 영상과 관객의 영상, 전문 연기자의 연기와 관객들의 일상, 6인의 보이스 오버 그리고 어쿠스틱 팝밴드 '뮤즈그레인'의 음악을 리드미컬하게 엮어 꽤 드라마틱한 영화적 감흥을 선사한다.   다음 시도는 2018년 말부터 기획되어 2020년에 완성된 '무주 배경 장편영화 제작 프로젝트'였다. 100% 무주 로케이션과 무주 주민 출연을 전제로, 두 편의 단편영화이자 한 편의 장편영화로 동시에 기능할 수 있는 장편 영화 제작을 목표로 시작되었고, 2년 만에 김종관,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달이 지는 밤>이 완성되었다. 무주의 같은 공간과 ‘유령’과 ‘위로’라는 주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고있다.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고, 2021년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라이브 연주 버전으로 상영되었다. 현재 <달이 지는 밤>은 정식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이다.   현재 거의 완성 단계에 돌입한 무주산골영화제의 세 번째 영화 제작 프로젝트인 장편 다큐멘터리 <무주>는 올해로 무주산골영화제의 10주년을 기념하고, 그 시간을 함께 해온 무주군민들을 위해 제작되었다. 작년 제9회 영화제에서 무주산골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뉴비전상과 영화평론가상을 동시에 수상한 <셀프-포트레이트2020>의 이동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작년 11월, 이동우 감독의 참여를 확정짓고, 3개월 정도의 기획 기간을 거쳐, 올해 2월 중순부터 약 4개월간,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총 26명의 무주주민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사이 무주기록관, 무주초등학교, 무주양수발전소와 몇몇 무주주민들로부터 무주의 과거 흑백 사진들을 수집했다. 이동우 감독은 주민들과의 인터뷰 영상과 수집된 과거 사진, 그리고 직접 연출한 영상을 조합하여 무주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무주의 현재와 진짜 무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원래 20분 정도의 단편 기획이었는데, 1차 편집본을 보고 이동우 감독과 상의 후 장편으로 기획 방향을 수정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이므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순 없겠지만,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건 당연히 이 영화에서 어떤 영화적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확장가능한 보편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반 주민의 인터뷰와 무주의 이야기라니, 별로 재미없겠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 작품은 이런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어, 재미있으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서울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살아는 사람들에게 꽤나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줄 거라 생각한다.   이동우 감독의 새로운 장편 다큐멘터리 <무주>는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의 개막 다음 날인, 6월 3일 금요일, 과거의 무주문화극장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무주전통문화의 집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이후에도 영화제 상영을 비롯한 다양한 상영 기회를 만들 생각이지만, 무주산골영화제에 오는 관객이라면 부디 처음으로 만나게 될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길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22_산골프로그래머의 첫 번째 편지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2022년 첫 번째 편지이제 영화제 개막일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다. 2년 만에 영화제를 제대로 준비하려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다 보니 몇 년째 계속해오던 일이지만, 올해에는 별수 없이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가 좀 늦어졌다.얼마 전 산골 무주와 관객 여러분을 위한 10번째 프로그램을 완성해서 공개했다. 총 31개국 110편과 총 14회의 공연을 준비했고, 이와 더불어 영화제 기간에는 관객과의 대화 23회, 토킹 시네마 9회, 상영 전 무대인사 8회, 야외 토크 4회가 함께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작년에 부분적으로 도입한 유료 예매시스템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전체적으론 유료 공간과 무료 공간으로 나누어 운영되는데, 등나무운동장 프로그램과 실내상영관 영화 상영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다. 등나무운동장은 1일 관람권 형태로, 실내상영관은 영화별 개별 예매로 진행된다. 이제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지난 9년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일단 전체적인 행사장의 분위기와 관객층의 변화가 예상된다. 예매 상황을 보니, 매진의 경향도 달라지고 있다. 작년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한 프로그램의 방향은, 무료로 즐기는 영화 소풍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에서 유료화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으로의 본격적인 전환이 시작될 것이고, 전체적인 프로그램도 더 다듬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디테일이 살아있는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또한 영화 프로그램 이외의 모든 관객 이벤트 프로그램도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무주산골영화제만의 고유의 색깔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내가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서 가지는 수십 가지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을 하나만 꼽으라면, 너무 쉽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화를 왜 굳이 무주까지 와서, 그것도 돈을 내고 봐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만들지 못하면 제대로 된 상영관도 없고, 도시의 영화관처럼 편한 좌석도 없고, 영사 상태도 일반 극장만 못하고, 숙소는 구하기 쉽지 않고, 숙소에서 행사장까지 거리도 상당하고, 야외상영이라고 한번 볼라치면 한 시간은 기본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 산골 마을까지 와서 굳이 영화를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올해 무주산골영화제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보고, 설사 무주에 오지 못하더라도, 이 모든 걸 감수하고 무주를 방문하고 싶어졌다면, 올해의 프로그램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상영작들의 상영을 허락해 준 감독, 프로듀서, 배급사 관계자 분들과 무주의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먼길을 기꺼이 와 줄 모든 영화인 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올해 영화제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10회 영화제를 함께 준비해온 모든 동료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신동환, 어느새 영화제의 핵심이 된 황혜성과 고영웅. 그리고 든든하게 허리를 받쳐주고 있는 김태이와 김용희와 채상훈,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올해 영화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즐겁게 일해주고 있는 최영, 김송희, 이예지, 기연주, 서윤아, 이가람, 구상현. 외곽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 김희진, 정하경. 여러분들이 올해 즐기게 될 무주산골영화제는 이들 덕분이라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이 전부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의 인원으로 이 정도의 프로그램을 가진 영화제 운영이 가능하냐고? 다른 데는 모르겠는데,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가능한 일이다.자, 드디어, 여러분들을 위한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가 다시 시작된다. 예매 상황을 보니,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무주에 오실 듯하다. 이 편지를 읽을 관객 여러분들에게만 올해 무주산골영화제를 즐길 팁을 하나 드리자면, 가급적 토요일 방문을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토요일을 피한다면 한결 여유 있게 영화제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팬데믹의 끝자락, 하늘과 바람과 별과 숲으로 가득한 산골 무주에 다시 영화가 도착했다. 올해로 열 번째다. 이 특별한 해에, 그 어느 해보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했으므로,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길 청해본다.아래 링크는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초대장이다.[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초대장] 

2021_산골프로그래머의 마지막 편지

  2021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 아홉 번째 무주산골영화제가 끝났다. 영화제를 끝내고 SNS를 살펴보는데, 올해 영화제에 다녀간 관객 한 분이 남긴 트윗이 눈에 들어왔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내년이면 딱 10주년을 맞이하는데, 지금까지 다섯 번 방문했으니 이 정도면 영화제와 깊은 우정을 쌓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같지 않은 건 나의 체력이고 발군의 영화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영화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 트윗을 한참 쳐다보았다. 고마웠다. 특히 ‘우정’이라는 단어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문득 영화제 시작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모두가 이런저런 일들로 많이 바쁠 때였다. 함께 모여 일을 하다가 무심코 “오늘은 꼭 ‘프로그래머 편지’를 써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동료가 “그 편지를 꼭 써야 해요?”라고 물었다. 바쁜 와중에 내 일손이 필요한 곳이 더 있지 않겠냐는 말로 들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계속해 온 일이니까 하는 데까지는 해야지”라고 답했다. 2016년, 영화제나 프로그램과 관련된 뒷이야기나 영화이야기, 영화제의 의도나 방향, 소감이나 느낌 같이 공식적으로 하기 애매한 이야기들을 편지 형식으로 관객 여러분과 나누기로 마음먹은 이후 6년 동안 한해도 빼놓지 않고 이 일을 했다. 매년 90편 내외의 영화들을 혼자 프로그래밍하다보니 바쁘다, 힘들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여러분께 쓰는 이 편지만큼은 영화를 선정하듯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유는 있었다.   2010년 즈음 세계 각국의 영화감독들과 평론가들에게 해마다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유명해지고 있는 영화제가 하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열리는 빈영화제. 1960년 빈에 거주하는 일군의 영화평론가들에 의해 ‘빈 영화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1962년부터 당시 빈의 시장이었던 프란츠 요나스에 의해 ‘비엔날레(Viennale)’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범한 영화제였다. 이 오랜 역사를 가진 영화제를 철저히 비타협적인 비경쟁영화제이자 전 세계 시네필의 성지로 자리잡게 한 인물이 있었다. 1997년부터 21년간 영화제를 이끌다가 2017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집행위원장이자 프로그래머였던 한스 후르흐 Hans Hurch. 2012년 빈영화제가 50주년을 맞이했을 때 그는 영국 영화전문지 ‘사이트&사운드’와 긴 인터뷰를 했다. ‘난 베게 밑에 총을 넣고 잔다’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이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요즘 어떤 영화제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제 철학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 기사 중에 영화제와 관객의 관계에 대해 말한 부분이 있다.   “내 전임자들과 나는 영화제와 관객 사이에 어떤 관계를 구축해왔다. 관객은 영화제를 믿어야 하고 영화제는 관객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 어떤 영화들을 상영하고자 할 때, 나는 우리 영화제의 관객이 그 영화들을 궁금해 할 것이고 보고 싶어 할 거라고 믿는다. 설사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객은 영화제가 자신을 (영화제가 원하는) 돈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처럼 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수십년 간 관객과 이러한 관계를 구축해왔고, 이것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한스 후르흐의 말처럼 나는 지난 6년간 이 프로그래머의 편지를 쓰면서 관객 여러분을 무주나 영화제에 와서 돈을 쓰고 가는 소비자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년 영화제를 하면서 행사를 치른다기보다 여러분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무주산골영화제와 관객 여러분과의 관계가 그저 서비스 제공자와 돈을 가진 소비자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길 바랐다. 그것이 무주산골영화제가 가진 특별함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고 편한 오래된 친구나 새로 알게 되었지만 마음이 맞아 오래도록 알아가고 싶은 새 친구 같은 관계면 좋겠다고 상상하기도 했다. 물론 나뿐 아니라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랐다. 이것이 이 편지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조금이라도 긴 글은 아예 읽지 않으려고 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재미없고 긴 편지를 도대체 누가 얼마나 읽는다고, 바쁜 와중에 기를 쓰고 이 편지를 꼭 쓰려고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면서도 편지 쓰기를 계속했던 이유였다.   올해 영화제는 프로그램 발표 직전까지 영화제 개최 여부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나와 동료들은 그 어느 해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홍보할 거리가 꽤 많았다. 하지만 얼리버드 1일관람권이 10분 만에, 1일관람권 본 예매는 2분 만에, 덕유산 1일관람권이 30초 만에 매진되는 걸 보면서, 무슨 유명 뮤지컬도, 아이돌 콘서트도 아닌데 이 작은 영화제가 느닷없이 암표가 있는 영화제가 되고, 심지어 지역 언론에서는 이게 무슨 큰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떠드는 걸 보면서, 그리고 매진된 이후부터 수많은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는 걸 보면서, 올해에는 영화제 기간에 있는 모든 영화상영, GV, 공연, 토크에 대해 어떤 사전 홍보도 하지 않겠다는 사업마케팅실장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영화제 기간 수많은 감독과 배우, 뮤지션이 다녀갔지만, 그중에는 꽤 유명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어떤 이벤트나 행사도 미리 알리지 않았고 행사 후 사진 몇 장 정도만 SNS에 공개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수많은 여러분들의 마음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역대급 폭우 속에 열린 개막식이 큰 사고 없이 끝나고 다음 날부터 가출한 날씨 요정이 집에 돌아왔지만, 영화제 기간 관객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적었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상영관에 관객이 너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잠시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러분들은 2013년 첫 영화소풍 때처럼 어디선가 바람처럼 나타나 딱 필요한 만큼 객석을 채워주었다. 우리는 결국 무주군을 설득했던 방식대로 영화제를 무사히 마쳤다. 아쉽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으면 많은대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기 때문에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방법이고, 관객 여러분이 불편할 걸 뻔히 알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영화제 때문에 무주군에 오는 외지 관객 수 자체를 제한하고,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쉽게 모이지 못하게 하면서 무주군으로부터 영화제를 개최를 허락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올해 영화제에 참석하고 싶어했는지 잘 알고 있다. 순식간에 매진이 된 이후 동료들은 여러분의 항의와 하소연과 불평과 불만과 아쉬움 섞인 전화를 매일같이 받아야 했고, 그 통화 내용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에게도 가감 없이 들려왔다.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친 모든 관객 여러분께, 특히 표를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도 표를 구하지 못한 분들에게, 등나무운동장 안에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예약한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영화제 기간 무주 곳곳을 여행해준 여러분에게, 셔틀버스나 자차가 없었음에도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그 먼 거리를 달려 덕유산 대집회장까지 와서 영화를 즐겨준 여러분에게, 양도가 안되는 걸 알면서도 중고마켓에서 티켓을 재판매한 분들 때문에 손해를 봐야 했던 관객 여러분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려운 티켓 경쟁을 뚫고 올해 영화제를 즐겨 준 여러분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함께 전한다. 방역을 위해 만든 원칙들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영화제 개최를 허락받은 입장에서 스스로 원칙을 깨는 일은 하기 어려웠다. 부디 내년에는 올해보다 한결 나은 모습으로 여러분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끝내고 보니 올해 영화제가 9회였다는 걸 실감했다. 내년이면 10회다. 10년. 요즘 같은 시대에 한 가지 일을 오래하는 게 예전처럼 존중받거나 인정받거나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나와 동료들은 9년이 다 되도록 극장도 없는 산골 무주에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영화제를 조금씩 키워가며 여기까지 왔다.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 앞으로도 여러분들과의 우정을 믿고 기억하며, 그 우정의 힘을 밑거름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 그리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발군의 영화’로, ‘미친 라인업’으로 여러분이 무주에 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한 프로그램과 함께 다시 돌아오겠다. 그땐 올해 영화제에서 보지 못한 분들도 함께 보고 놀 수 있으면 좋겠다. See you next year! Our friends! 

2021_산골프로그래머의 세 번째 편지

​ 2021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세 번째 편지영화제 전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일 것 같다. 영화제나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매번 시간에 쫓겨 머리 속에 있는 대로 쓰기가 쉽지 않다. 자, 지금부터 오랜만에 프로그래머 모드를 켜고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과 영화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려고 한다.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잘 읽히면 좋겠고, 잘 읽히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읽어주면 좋겠다. 이제 시작한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에 대하여무주산골영화제의 대부분의 상영작은 이미 개봉한 영화들이다. 그러다보니 올해 영화제 상영작 선정 과정은 더 어려웠다. 알다시피, 작년과 올해 극장 관객이 급감하면서 개봉작품수 역시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상영작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예년과는 다른 조금 다른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한국영화 신작 편수가 늘었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한국장편영화경쟁부문 상영작 말고도 꽤 많은 신작 한국영화들이 상영된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어려워진 한국영화들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감사하게도 한국장편영화경쟁 부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신작 한국영화들의 제작진이 무주를 찾을 예정이며, 그래서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될 것이다.  두 번째, 무주산골영화제는 그동안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를 제외한 왓챠와 같은 OTT 플랫폼과 디지털 개봉 시장 (IPTV, VOD 등)을 통해 공개된 영화들을 엄선하여 꾸준히 상영해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예년에 비해 그 수가 많은 편이다. 작년과 올해 영화시장 전체가 극도의 침체 상태였음에도 작품성 높은 신작들이 극장이 아닌 다양한 경로로 지속적으로 공개되었지만 관객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이런 영화들 중에서 특히 여러분이 주목해주었으면 하는 영화들이 있다. 4편의 영국영화들이다. 영국영화는 미국영화와 같은 영어권의 영화다. 같은 언어를 쓰는 영화지만 미국영화는 소재와 장르에 관계없이 미국적이면서도 엔터테인먼트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영국영화들은 이른바 켄 로치로 대표되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자장 안에 있는 영화들이 많다. 어떤 소재든, 어떤 장르를 활용하든 부조리한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동시대 영국의 현실을 다양한 시각으로 담아내는 영화들이 많고, 가디언이나 사이트 앤 사운드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영국영화들들은 대부분 이런 영화들이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네 편의 영국영화들 역시 마찬가지 영화들이며 올해 영국아카데미의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동시대 영국영화를 대표할만한 수작들이다.   한국에선 정식 개봉하지 못했지만 작년과 올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한 편인 <사운드 오브 메탈>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리즈 아메드가 주연을 맡은 바삼 타리크 감독의 <모굴 모글리>(2020)는 빤한 전개를 예상했던 관객의 뒤통수를 때리는 훌륭한 심리극이다. 실제 파키스탄계 영국인이자 래퍼이기도 한 리즈 아메드는 영화 속에서도 같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뛰어난 내면연기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올해 영국아카데미에서 무려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화제를 모은 사라 개브론의 <어느 소녀 이야기>(2019)는 최근 여성주의 영화들이 주목받는 트랜드 속에 있으면서도 영국의 사회적 리얼리즘의 경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작이며, 스티븐 소더버그가 제작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브라이언 웰쉬의 <비츠>(2019) 역시 1990년대 중반, 사회적 억압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영국 청년들의 펄떡거리는 에너지를 훌륭하게 담아낸 영화다. 마지막으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첫 공개되었던 <폭력의 그림자>(2019)는 배리 케오간과 코스모 자비스의 인상적인 연기와 안정적인 연출력으로 다소 관습적인 설정과 예측 가능한 내러티브를 약점을 돌파해내는 뚝심이 돋보이는 영화다. <폭력의 그림자>는 곧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이고, 나머지 세 영화는 '왓챠'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니, 혹시 무주에서 못 보신 분들은 영화 제목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무주산골영화제의 라인업은 얼핏 유명한 작품들만 모아놓은 것 같이 보일 수도 있고, 재미없는 온갖 예술영화들만 모아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주산골영화제의 상영작 선정작업은 최근 수년간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공개된 주요 신작 리스트와 전 세계 주요 매체들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리스트를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 있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 상영작 리스트가 전 세계 영화의 흐름 및 경향을 담아내는 어떤 지도처럼 기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영작들을 선정해왔다. 따라서 무주산골영화제의 상영작들은 당연히 산골 무주를 찾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 리스트이지만, 또 한편으론 바빠서, 코로나 때문에, 너무 멀어서, 무주의 상영관이 극장이 아니라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무주에 오지 못하는,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을 위한 추천 영화 리스트이기도 하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상영작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을 시간날 때마다 한편씩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제 무주산골영화제의 아홉 번째 영화소풍이 시작된다. 올해 관람권 예매 현황과 홍보 과정을 눈여겨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얼마나 많은 관객 여러분을 올해 영화제에 오게 할까 하는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 홍보할 내용이 많았지만 예매 실패한 여러분들을 위해 홍보 자체를 극도로 자제했다.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올해 어렵게 일일관람권 예매에 성공한 분들 중 특히 매년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았던 분들이라면, 올해 영화제 분위기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행사가 시작되어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아마도 예상보다 훨씬 더 여유있는 영화제가 될 것 같다. 야외행사장까지 포함해서 관객 수 자체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일일관람권의 특성상 실내와 야외상영장 모두 입장 관객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은 미리 줄을 서지 않으면 못 볼 수 있지만 유명한 가수의 공연을 보는 데에 목메지 않는다면 그 어느 해보다 한가하고 여유있게 영화를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동료들은 올해 무주산골영화제를 지금의 방식으로 개최하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했다. 이런 시기에 영화제를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절감하며 준비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당연히 부족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최선의 노력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닐 테니까. 부디 부족한 점들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면 좋겠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대사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엔 이 대사가 자꾸 떠올랐다.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응원보다 우려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감사하다는 말 말고는 딱히 대신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보여준 매진 사례는 두고 두고 큰 힘이 될 것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써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반가운 눈인사와 함께 결국, 다시, 산골 무주에서 오랜만에, 그리고 안전하게 여러분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 

2021_산골프로그래머의 두 번째 편지

 2021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예매가 시작됐지만 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상황을 보니 1일관람권을 구한 분들보다 구하지 못한 분들이 더 많은 듯하다. 이리저리 원망 섞인 말도 듣고, 전화로 화내시는 분들도 있고, 이제 더 이상 진짜로 관람권이 없냐는 하소연도 듣고 있다. 얼리버드 관람권이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고, 관람권 예매 일정을 예고한 후 사무실로 걸려오는 문의 전화와 문의 메일의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왠지 빨리 매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빨리 매진될 줄은 몰랐다. 예매 가능 관람권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지도 않았다. 정부와 무주군의 방역 지침과 가이드 라인을 바탕으로 전체 예매 매수를 정했다. 맘 같아선 조금 더 늘려보고 싶은데, 방역 지침이 완화되지 않는 한 죄송스럽게도 올해는 그럴 수가 없다. 이 시기에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건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거다. 이미 공지했지만 현장에서 판매되는 1일관람권은 없다. 혹시라도 무주에 오면 어떻게든 행사장에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외 행사들까지 전부 출입이 통제되므로 예매 티켓이 없으면 아예 실내, 야외 행사장, 상영관 모두 출입할 수 없다. 인터넷을 살펴보니 중고거래사이트에서 1일관람권을 사고팔려는 분들이 있던데, 예매자 본인이 실물 신분증을 지참하고 오지 않으면 절대 1일관람권을 받으실 수 없으니 혹시라도 괜한 피해를 보는 분들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일관람권이 있더라도 방역지침에 따른 영화별, 공연별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이 정해져 있고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영화나 공연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역시 방역 지침 때문에 이미 공지한 내용이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니 부디 이해부탁드린다.   가끔 왜 1일관람권이어야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무주산골영화제가 지금까지 지켜온 방식 안에서 방역 지침에 따라 행사장 내 밀집도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고, 두 번째 이유는 무주에는 극장이라고 할만한 공간이 무주산골영화관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이유들은 영화제의 철학과 관련된 이유도 있고, 다른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는데, 위의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게 설명이 될 듯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여튼 올해 1일관람권 예매 전쟁(?)에서 승리하신 분들께는 축하를, 실패하신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부디 너무 화내거나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관람권을 예매 못한 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사무국에 전화해서 화를 내고, 불만을 터뜨리셔도 올해는 방법이 없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해부탁드린다. 그리고 무주산골영화제가 올해만 하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년엔 코로나 상황도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고, 더구나 내년은 무주산골영화제가 무려 1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더 풍성한 프로그램이 준비될 것이므로, 부디 올해 아쉬움을 빨리 잊고 내년을 기약해주면 정말 감사하겠다.   사실 이번 편지에서는 영화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명색이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인데, 작년부터 영화 이야기보다 맨날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미안하다, 고맙다, 이런 이야기 밖에 못해서 영 맘이 별로였다. 하지만 예매가 단 몇 분 만에 허무하게 끝나버린 후 쏟아지는 불만과 항의 전화 때문에 어수선한 사무실의 풍경을 보면서 영화이야기보다 예매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부디 이해 부탁드린다. 하지만 다음 편지에서는 진짜 영화 이야기를 여러분께 해드릴 생각이다. 며칠 안에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다. 씨 유 순~! 

2021_산골프로그래머의 첫 번째 편지

  2021년 산골 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200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프로그램팀 스텝 일을 했을 때였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지 않아 극장에 문제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급하게 극장에 도착하니 관리인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1층 로비에 가득했다. 이렇게 늦게까지 뭐 하는 짓이냐. 빨리 끝내고 나가라. 난 이제 자야 한다. 지금 안 나가면 극장 불을 꺼버리겠다. 아저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 건물 안에 극장이 몇 개씩 있는 멀티플렉스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영화제가 사용했던 극장들은 단층 혹은 2층 건물에 스크린이 1개 또는 2개가 있는 단관극장들이었다. 그 극장들 중에는 가끔 관리인 아저씨가 극장에서 숙식을 하고 매점을 운영하면서 극장 관리도 함께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문제가 생긴 극장이 바로 그런 극장이었다. 화가 난 아저씨 주변에는 노란 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 몇 명이 모여 이제 곧 끝난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밖에선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도대체 안에선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곧장 극장 입구로 가서 문을 열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수선했던 밖과는 달리 극장 안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어두운 극장 안에는 십여 명 사람이 있었는데, 몇 명은 무대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객석에 앉아 있었다. 앞에 선 외국 감독이 말을 하면 통역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조용히 그 말에 집중했다. 통역이 끝나면 관객들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모두가 몰입하고 있었고, 그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였다. 사실 난 거기에 관객과의 대화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빨리 그 상황을 정리하러 간 거였다. 하지만 난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극장을 나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관리인 아저씨를 설득하기 위해 로비로 향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해프닝 같았던 이 짧은 순간이 영화제의 본질과 현실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꽤 은유적인 순간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후였다. 영화제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 가치는 초기부터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싸워서 현실을 바꾸어보려고 했던 노력의 역사가 곧 영화제의 역사이기도 했다. 굳이 코로나19나 팬데믹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영화제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적이 없었다. 2013년 무주에서 산골영화제를 시작한 이후 가끔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 때마다 나의 첫 영화제가 선물해 주었던 이 영화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지만 올해처럼 자주 이 순간을 머릿속에 떠올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말이나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일과 시간들이 있다. 최근 몇 개월은 그런 시간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망설이고 기다리느라 그렇게 하지 못하기도 했다.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모든 일정들이 밀리면서 태반의 일들을 계획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사실 ‘어찌어찌’보다 ‘가까스로’가 더 적확한 단어일 테지만, 왠지 ‘가까스로’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영화와 공연, 올해 준비한 모든 프로그램을 싹 다 공개했다.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런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영화제를 준비해 줘서 고맙다는 영화인, 관객 여러분의 응원과 이런 시기에 영화제가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기어이 하려고 그러냐는 몇몇 사람들의 비판에 대한 나와 동료들의 답변이다. 9년째 겪는 일이지만 준비한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일은 영화제 전체 준비과정 중 가장 긴장되는 일 중 하나다. 여러분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디 올해에는 프로그램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프로그램 안에 담긴 나와 동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관객 여러분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 영화를 출품해 주고, 영화의 상영을 허락해 준 모든 창작자 및 영화산업 관계자분들, 이 영화제가 개최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응원과 지지와 비판을 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특히 이 잊지 못할 시간의 터널을 함께 통과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 동환, 혜성, 하나, 영웅, 태이, 용희, 상훈, 지영, 혜린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정말로 진짜로 영화제가 시작된다. 방역 지침 때문에 여러분의 예상보다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고, 우리의 예상보다 여러분의 참여가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동료들은 여러분이 몇 명 오느냐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산골 무주까지 오기로 맘먹고 어렵게 1일 관람권을 구한 분들이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영화제를 즐기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다소 수고스럽겠지만, 1일관람권을 예매한 다음 어떻게 하면 그 어느 해보다 즐겁게 올해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준비해 주면 좋겠다. 6월 3일, 산골 무주에서 마스크를 쓴 여러분과, 결국, 다시, 만날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다음 링크는 올해 영화제를 여는 글이자, 관객 여러분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https://c11.kr/p10k)※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상영작 리스트 https://c11.kr/p10m※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 소개 영상 https://tv.naver.com/v/20041445​  

2020_산골프로그래머의 마지막 편지

2020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    조금 심각하긴 해도 올해만 견디면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봤으니 이 정도 겪었으면 내년엔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은 어수선했지만 시간은 잘도 흘렀고 기다리던 백신과 치료제 개발 소식과 함께 겨울이 왔다. 하지만 기대는 불안으로 바뀌었고 상황은 오히려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막막한 한해였다. 코로나19는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나와 동료들의 노력은 번번이 헛수고가 되었다. 모두가 똑같이 경험하는 일이었으니 견뎌야 했지만 지치고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막막할 때마다 올해 영화제를 열었던 글(http://reurl.kr/4CDEC937KL)을 꺼내 읽었다. 글에 담았던 마음을 기억했고, 긴 고민 끝에 결정했던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 년 내내 최선을 다했다. 제대로 할 수 없어 뭐하나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간신히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이 험난한 시간을 함께 통과하면서,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온 이 영화제가 가진 가치와 가능성,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평범하고 익숙한 단어들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표정, 휴식, 만남, 소풍, 함께, 여행, 공연, 그리고 극장, 영화... 우리 모두의 일상 구석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던 아주 소소한 이 단어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고 있었는지를.   2021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나와 동료들은 다시, 여러분의 마음을 떠올리고, 너무 익숙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단어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내년 9회와 내후년 10회 무주산골영화제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일은 지난 8년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초록의 산골 무주를 배경으로 영화제를 통해 여러분에게 휴식과 위로와 낭만을 선사하는 일이었다. 상황이 얼마나 나아질지 알 수 없고 여전히 우리의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는 늘 그래왔듯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일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부디 2021년에는 우리의 노력이 온전한 모습으로 여러분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마스크 쓴 사람들만 보이는 한산하고 낯선 세밑 풍경 속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20년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정말 수고 많았다’고 말하면서, 토닥토닥 서로의 등을 두드리고 밝은 미소로 서로를 안아주면서 ‘헌’해를 보내고 ‘새’해를 함께 맞이하면 좋겠다. 올해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오래된 친구처럼 관객 여러분과 다시 만날 날을 준비하겠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면 더 좋겠다. 

2020_산골프로그래머의 다섯 번째 편지

2020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폴더를 뒤져보니 첫 기획서 파일 이름 밑에 2017년 12월 4일이라고 써있다. 17장짜리 PPT파일이 70분짜리 장편영화가 되는데 꼬박 2년 10개월이 걸렸다. 무주산골영화제와 관련된 일 중 아이디어가 실제 결과물로 나올 때까지 1~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 별로 없지만, 이번 [무주배경 장편영화 제작 프로젝트]는 유독 각별한 감정이 든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영화제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몇 가지 일 중 하나가 다시 한번 현실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공간, 두 명의 감독,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된 이야기. 각각 완결된 두 편의 단편영화인 동시에 한 편의 장편영화인 영화. 두 편의 영화 중 어느 것을 앞에 두어도 하나의 영화가 되는 영화. 충분하진 않지만 그렇게 모자라지도 않아서 만들면서 펀딩이나 관객 수에 대한 고민보다 영화적 고민을 우선할 수 있는 영화, 100% 무주 로케이션과 무주 주민 엑스트라 출연을 전제로 이런 이상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독일의 대표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트, 도미닉 그라프, 크리스토프 호흐호히슬러가 참여한 <드라이레벤>(2011)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나의 공간, 같은 시간, 하나의 사건을 공유하는 삼부작 TV 미니시리즈면서 각각의 완결성을 3편의 장편영화다.    참여할 두 감독은 개성과 연출력을 모두 갖춘 감독이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어야 했다. 많을 것 같은데 막상 찾아보면 이런 감독 찾기가 쉽지 않다. 간신히 기획개발비만 펀딩한 상태였지만 장건재 감독이 먼저 수락해 주었다. 뒤이어 김종관 감독이 함께 하기로 했다. 일순위로 생각했던 최고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두 감독도 내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시간이 올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던 나도 그땐 이렇게 흥미로운 장편영화가 나올 줄 몰랐으니까. 무엇보다 영화가 잘 완성된다고 해도 작은 영화제에서 기획한 영화가 큰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건 영화를 완성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극장 개봉이 최종 목표였으므로 국내외 메이저 국제영화제 상영을 먼저 시도해보기로 했다. 첫 목표는 해외영화제 상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계획을 바꿨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기로 했다. 출품하는 날, 혹시 떨어지면 난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를 잠깐 상상했다. 며칠 뒤,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시즌 2 준비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차를 타고 급하게 서울로 향하던 중이었다. 종로에 들어섰을 때 정한석 프로그래머에게 전화가 왔다. 올 것이 왔다. 발신자 이름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영화 좋네요. 이번엔 영화로 부산에 한번 오시죠.” 전화를 끊고 나서야 주책없이 내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깨달았다. 오랫동안 출품된 영화를 보고 판단하는 일만 하다가 입장이 바뀌어보니 그동안 영화를 출품해 준 감독과 피디들에게 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년 10개월의 긴 여정의 첫 마침표가 이렇게 찍혔다. <달이 지는 밤>이 2020년 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었다.   <달이 지는 밤>을 이루는 두 개의 영화는 두 감독이 오랜 시간 쌓아온 각각의 세계의 연장선 상에 있지만 두 영화 모두 장르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그동안의 영화와는 또 다른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두 영화는 같은 공간과 같은 주제를 공유하면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영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한 영화가 먼저 완성되었고, 한 감독은 그 영화를 보고 자신의 영화를 이어 만들었으므로 한 영화가 편지라면, 다른 영화는 답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김금순과 안소희, 강진아와 곽민규의 연기다. 이들의 훌륭한 연기 앙상블은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고, 영화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조금 더 말하고 싶기도 한데 영화가 공개되기 전이므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제 감사 인사를 할 시간이다. 무엇보다 김종관, 장건재 감독에게 정말 고맙다. 긴 시간을 기다려주었고 함께 해주었다. 충분하지 않은 여건이었겠지만 자신의 영화만큼 영화 전체를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해 주었다. 두 감독이 있어 의지할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특히 추석 연휴에도 두 영화를 하나로 만드는 후반작업 과정을 주도해 준 장건재 감독, 윤희영 피디, 김우리 피디께 감사하다.  그리고 무주산골영화제의 서류와 말을 믿고 이런 쉽지 않은 영화의 제작을 지원해 준 무주군수 이하 무주군의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그 긴 시간을 거쳐 관객과 만날 수 있었던 건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프로듀서 역할을 하며 전체 펀딩과 예산을 총괄했던 신동환 사무국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조차 꺼내기 쑥스러운 오랜 동료지만 많은 분들이 그의 능력과 노력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영화산업 전체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닥쳐오고 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화제 역시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어떤 변화가 와도 영화제는, 수익을 목표로 하는 영화산업이 하는 일과는 다른 일, 그들이 할 수 없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화제의 존재 가치는 그런 노력들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주산골영화제가 「무주에 어디 볼 데가 있습니까?」(글. 정원선) 같은 무주에 관한 책을 출판하고, 관객과 함께 <순간>(감독. 윤재호)같은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백은하 배우연구소와 함께 <넥스트 액터>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배우에 관한 전시와 함께 전문책자를 출판하고, 무주산골영화제 사용설명서와 IF시리즈 같은 무주를 담은 영상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바로 영화제에 대한 나와 동료들의 이런 믿음 때문이다. <달이 지는 밤>도 이런 믿음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월 21일 수요일, 오늘 오후 7시 30분,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달이 지는 밤>이 관객과 첫 만남을 갖는다. 매년 상당한 수의 영화를 보는 내 눈에 <달이 지는 밤>은 꽤 괜찮은 영화다. 하지만 일반관객들과 영화관계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다.  궁금하고, 불안하고, 기대된다. 부디 그들에게도, 무주산골영화제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께도 이 영화가 괜찮고 멋진 영화면 정말 좋겠다. 며칠 전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감사하게도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에 초대받았다. 내년엔 극장 개봉을 하려고 한다. 물론, 무주산골영화제가 만든 영화니 내년 무주산골영화제에서도 상영한다.   영화는 각자 자기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지만 종종 관객들이 영화의 운명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갈 길이 머니, 영화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부디 여러분들이 <달이 지는 밤>을 기억해 주고, 관심 가져주고, 좋아해 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의 호응이 있다면 무주산골영화제는 다른 두 명의 감독들과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20_산골프로그래머의 네 번째 편지

2020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전하는 네 번째 편지 지난 8월, 일부의 반대와 우려를 간신히 이겨내고 어렵게 힘을 모아 준비했던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시즌 2를 다시 연기했다. 모두가 똑같이 겪는 시간이었으므로 두 번째 결정은 첫 번째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 결정보다 쉬웠다.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우리의 결정을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준비하려고 하니 좀 막막하기도 했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은 코로나19는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어떤 다음 계획도 무용하게 느껴졌다. 규모를 줄이더라도, 코로나 상황이 다소 악화되더라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했다.   이 와중에 변화가 하나 생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운영 주체가 사라진 ‘무주산골영화관’의 운영을 무주산골영화제가 맡게 되었다. 무주산골영화제에 와 본 관객들은 잘 알겠지만, ‘산골영화관’은 변변한 극장이 없는 무주에 2014년 만들어진 유일한 극장이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일반 상업영화 개봉작들과 함께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한 영화들을 한 달 동안 상영하기로 했다. 아주 작은 극장이라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면 회당 최대 21명의 관객 밖에 수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주산골영화관은 2개 관이라 이 계획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고서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시즌 2가 어제부터 시작했다. ‘시즌 2’라고 이름 붙였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제야 진짜 영화제를 치르게 된 셈이다. 지난 6월 온라인 라이브로 영화제를 하면서 선보였던 영화들과 무주지역 내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상영할 ‘키즈스테이지’ 상영작을 뺀 총 77편의 장편영화들이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5일, 하루 4편씩 한 달간 상영된다. 많이 아쉽지만 엄중한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약속했던 영화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예매가 되니 와서 영화제 때처럼 줄을 서고도 허탕칠 리는 없을 테지만, 워낙 작게 하는 상영회라 무주까지 와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여러모로 고민할 게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 2 무주 상영회’가 무주를 찾을 관객 여러분께 선사할 선물은 영화만 있는 건 아니다. 여러분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무주에 다시 오게 된다면, 영화제 관객으로 북적였던 활기찬 초여름의 무주가 아닌 조용하고 고즈넉한, 어떤 면에선 쓸쓸하기도 한 진짜 산골 무주의 일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번 “무주 상영회”가 영화와 함께 여러분에게 선사할 진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6월, 올해의 영화제를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의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어떤 사람이 혼잣말을 하듯 한 마디를 툭 뱉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했다. 그가 말했던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와 동료의 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들은 영화제를 위해 일년 내내 일하지만, 영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던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영화제는 열려야 한다고 믿는 건 아니다. 영화 하나 보지 않는다고 영화제 한번 열리지 않는다고 우리 일상에 별다른 일이 생길 리 없다.   하지만 어려운 시대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문화예술의 역할은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는 더 그렇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에게 영화는 안 보면 그만인 것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숨 쉬고 밥 먹는 일만큼 중요한 삶의 일부일 수 있다. 사실 영화제는 처음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이런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영화제는 한 도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제가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문화예술행사가 그렇듯. 이것이 영화와 극장이 가진 의미를 기억하며 몇몇 사람들의 반대와 비난에도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나와 동료들의 마음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도 같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시대지만 시간이 되면 예쁜 산골 무주에 와서 영화 두 편 정도 보고 가는 작은 소풍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긴장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이번 ‘무주 상영회’가 생각보다 꽤 근사한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친구처럼 다시, 여러분과 ‘무주산골영화관’에서 다시 만나게 되길 청한다.  🌳​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시즌 2 : 무주 상영회 🌳​ ​📌시간표 - https://c11.kr/iffs📌예매 - https://c11.kr/ifft 

2020_산골프로그래머의 세 번째 편지

2020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전하는 세 번째 편지​ 온라인 라이브, 그러니까 관객 없이 생방송으로 영화제를 진행한다니,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그것도 서둘러 준비하려니 쉽진 않다. 준비 시간이 적은 것이 좀 아쉽지만 영화제가 이런 일을 미리 준비할 일이 없어야 하고, 다시는 이렇게 영화제를 치르고 싶진 않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온라인 생방송 영화제의 가장 큰 고민은 분명히 오프라인 행사보다는 적은 사람들이 볼 것이므로, 어떻게 관객 여러분들이 온라인 생방송에 참여하도록 만들 것인가이다. 많은 분들이 많이 참여해 줄수록 생방송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더 기운을 내서 더 열심히 할 것이고, 그래야 온라인 생방송 프로그램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디 시간 내서 많이들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   그래서 본 영화제 전에 라이브 생방송을 통해 공개될 프로그램 중 여러분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하려고 한다. 폴킴, 적재, 픽보이, 치즈, 새소년, 윤석철 트리오 등등 국내 최고의 실력파 뮤지션들의 공연들은 더 설명하고 소개해봐야 입만 아프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분들이 많을 테니 이분들과 공연에 대한 소개는 생략한다. 사실 이분들의 공연 말고도 볼만한 프로그램들이 꽤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봐 주면 좋겠다. 지금부터 소개한다.   1. 관객과 함께 완성한 단편 다큐멘터리 <순간 2019> 개막식 최초 공개!무주산골영화제는 작년부터 영화제에 모인 관객들이 무주에서의 아름답고 의미 있는 ‘순간'을 직접 촬영한 영상들을 모아 단편영화 또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로젝트 <순간>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작년 하반기에 완성되어 올해 개막식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전 세계에서 하루 동안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여 완성한 케빈 맥도널드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라이프 인 어 데이 Life in a Day>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되었다. 7회 영화제가 열렸던 작년 6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 4박 5일 동안 약 200여 편의 관객 영상이 SNS를 통해 모집되었으며 이 영상 중 윤재호 감독에 의해 선정된 12편의 짧은 영상이 영화에 사용되었다. 다큐멘터리와 장·단편 극영화를 오가며 영상을 통한 스토리텔링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윤재호 감독은 예측할 수 없는 본 프로젝트의 기본 스토리텔링을 위해 김혜나 배우와 함께 촬영한 짧은 영상을 축으로 12개의 관객 영상 그리고 6명의 보이스오버, 유니크한 감성의 어쿠스틱 팝 밴드 뮤즈그레인의 음악을 결합시켰다. 이 영화에 사용된 뮤즈그레인의 음악은 뮤즈그레인이 무주산골영화제의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에 참여하면서 작곡한 곡들을 모아 발매한 앨범 <트립 투 무주 Trip to Muju>에 수록된 곡 중 하나다. 영화감독의 영상과 관객 영상, 전문 연기자의 연기와 우리들의 일상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 <순간>은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드라마틱한 영화적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사실 윤재호 감독으로부터 결과물을 받기 전까지 이 정도로 드라마틱한 톤을 가진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하진 못했다. 여러분의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 <순간 2019>가 궁금한 분들은 6월 4일 목요일 오후 7시에 시작되는 온라인 라이브 개막식에 참여하면 된다. 총 러닝타임은 5분 정도이고, 최초 공개다. 사실 올해에도 <김군>의 강상우 감독과 <순간 2020>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영화제 개최 방식이 변경되면서 올 한 해는 건너뛰기로 했다. 강상우 감독과 무주의 관객들이 함께 또 다른 무주산골영화제에서의 <순간>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면 좋겠다.   2. 올해 넥스트 액터, 배우 고아성이 직접 연출한 넥스트 액터 트레일러 최초 공개!올해 개막식에는 또 한편의 영상이 공개된다. 바로 올해 넥스트 액터인 배우 고아성이 직접 연출한 넥스트 액터 트레일러다. 작년 첫 넥스트 액터였던 박정민 배우가 자신이 직접 연출을 맡아 Who’s the Next?라는 콘셉트로 넥스트 액터 트레일러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https://youtu.be/LhpAAehpOgE)​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래서 올해에도 고아성 배우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는데, 기다렸다는 듯 너무 아무렇지 않게 트레일러 제안을 수락해 주었다. 고아성 배우는 박정민 배우 트레일러의 기본 콘셉트를 이어받으면서도 심플하지만 특별한 콘셉트를 더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인화되기까지의 시간은 넥스트 액터가 누구인지 밝혀지기까지의 시간으로 은유되고 고아성 배우는 이 짧은 영상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한다. 아주 심플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세련되면서도 영화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는 고아성 배우의 연출력을 보고 있자면, 이 배우가 언젠가 감독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지난 몇 개월간 고아성 배우와 몇 차례 만나고, 그와 그의 연기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건 오랜 시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성장해온 이 배우는 이미 완성형 배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단단한 모습으로 성장 중이라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보내준 글에는 고아성 배우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대체 불가능한 느낌을 주는, 배우로서는 최고의 덕목을 가진 배우.” 이런 그가 직접 연출한 트레일러가 최초로 보고 싶은 분들은 개막식 라이브 방송에 참여하면 된다. 그리고 6월 5일 금요일 오후 4시 40분에는 백은하 배우연구소장과의 온라인 라이브 토크도 준비되어 있으니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제 기간에 다하지 못한 영화 상영 및 토크 프로그램과 전시는 하반기 일정을 기대해 주면 좋겠다. ※넥스트 액터 고아성 셀프 트레일러 예고 - https://youtu.be/OE7iN76OQMM※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사용설명서 넥스트 액터 - https://youtu.be/G8Byc7ZFres 3. 배순탁 작가와 함께 하는 <뮤직 라이크 무주 Music Like Muju>무주산골영화제의 영화 및 공연을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기획 방향은 첫째, ‘남들이 하는 건 일단 하지 않는다’이고, 둘째는 ‘엄선’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들은 프로그래머의 눈이라는 체를 거쳐 걸러지고 그렇게 걸러진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난다. 체는 촘촘할수록 많은 것들이 남고, 성길수록 적게 남는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촘촘하기 보다 성긴 체를 선호한다. 우리는 큰 예산도 없고, 많은 프로그램을 모두 소화할 공간도 없다. 그래서 이건 관객들에게 정말로 꼭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골라내기 위한 우리만의 생존 전략이다. 이 전략은 영화 프로그램뿐 아니라 공연 프로그램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유명한 가수를 부를수록 모객이 쉽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모객을 위해 유명한 가수를 부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무주산골영화제가 많지 않은 예산에도 공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뮤지션 선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아주 유명하지 않아도 트렌디하면서도 실력 있는 무주산골영화제에 어울리는 뮤지션을 선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무주산골영화제에는 공연 프로그램 기획과 문화 기획, 디자인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료들이 있지만 우리의 체는 뮤지션에 관한 한 아주 전문적인 건 아니다. 그래서 비슷비슷한 형식의 공연에 새로움을 부여하고, 음악적으로도 전문성이 담보되면서도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떠올렸다. 배순탁 작가와 함께 하기로 한 건 그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뮤직 라이크 무주 Music Like Muju> 다. ‘음악은 무주를 좋아해’라는 뜻도 되고, ‘무주 같은 음악’이라는 뜻일 수도 있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배순탁 작가의 음악적 전문성과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 정체성과 공간적 정체성을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배순탁 작가를 통해 아주 유명하지 않아도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재조명되고, 이 기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배순탁 작가는 올해 총 5명의 뮤지션을 추천해 주었고, 협의를 통해 스텔라장과 프롬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배순탁 작가가 직접 쓴 스텔라장과 프롬에 대한 짧은 리뷰는 올해 카탈로그를 다운로드 받아 보면 읽을 수 있다. (올해 공식 카탈로그 다운받기 - https://c11.kr/fpnv) 6월 7일 일요일 16시에 방영될 <뮤직 라이크 무주>에선 배순탁 작가의 진행으로 스텔라장과 프롬의 공연이 연달아 펼쳐질 것이다. 스텔라장과 프롬을 좋아하는 팬들뿐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좋아해 주면 내년엔 무주에서 새로운 뮤지션을 배순탁 작가와 함께 만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무주산골영화제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는 개막작과 무성영화 라이브연주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개막작 리허설을 몇차례 봤다. 무관객인 것이 많이 아쉽다. 코로나가 좀 나아지면 관객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려고 한다.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 역시 기대가 된다. 신나는 섬은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에 관한한 전통의 강자다. 그리고 윤석철 트리오는 이 밴드가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를 하는 걸 보신 분들이 많진 않겠지만 윤석철 트리오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이라면 이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올해 <한국장편경쟁부문 상영작 감독들과의 토크>도 3회에 걸쳐 준비되어 있다.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 허남웅 영화평론가가 진행을 맡게 된다. 토크를 보며 한국영화감독들을 응원하고 올해 수상작을 예측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뽀로로를 능가하는 초통령이자 최고의 크리에이터 '도티'의 토크 프로그램과 올해 산골책방 파트너 스틸북스와 스틸북스의 그림책 클럽 '스틸로'와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스틸로 그림책 콘서트>는 가족들이 함께 보면 더 좋을 것이다. 도티야 유튜브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니 재미을거라 말하지 않�年� 당연히 잘 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책 콘서트는 도대체 뭔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림책을 촬영한 영상에 가타리스트의 즉흥연주를 얹어 그림책을 소개하는 일종의 북콘서트다. 리허설을 보면서 새로운 시도에 눈을 뗄 수 없었고 무관객 라이브 방송으론 그 감흥이 다 전달될  것 같지 않아 아쉬웠다.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 4일 오후 7시부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난다. 그래서 걱정도 많이 되고 조금 무섭기도 하다. 이 여정에 무주산골영화제를 사랑하는 많은 관객분들이 동행해 주면 좋겠다. 관객 여러분이 함께 할 때 의미있는 길이 될 테니까.  ※ 개막작 <쇼쇼쇼! 또순이랑 우주랑> 소개 영상 보기 -  https://vo.la/TJa2  - <또순이>(1964, 63분) + 라이브 연주_밴드 우주도깨비 ※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 소개 영상 보기 - https://youtu.be/ZIQmJm0K2Nc?t=710   - <항해자>(버스터 키튼, 1924, 60분) with 라이브 연주 <신나는 섬>   - <봉급날>(찰리 채플린, 1922, 21분) + <유한계급>(찰리 채플린, 1921, 32분) with 라이브 연주 <윤석철 트리오>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공식 유튜브 youtube.com/user/mujufilmfestival📌공식 네이버TV tv.naver.com/mjff   

2020_산골프로그래머의 두 번째 편지

2020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두 번째 편지​ 다 못해도 우리는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국에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영화제를 한다는 게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일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안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영화로, 음악으로, 자연으로 잠시 쉴 수 있는 시공간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이, 야외에서 영화 보고 어울려 음악을 듣는 것이 밥 먹는 식당이나 술 먹는 호프집이나 커피 마시는 카페보다 위험할리 없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힘든 시간일수록 영화를 보고 즐기고 쉬는 일도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올해에는 유난히 영화제에 담고 싶었던 마음들이 많았다.  하지만. 거의 할 수 있을 뻔했지만. 결국 이태원 클럽발 고비를 넘지 못했다. 5월 20일 오후, 정상 개최를 기대하며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던 최종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원래부터 안되었던 일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나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정신없이 한바탕 전화를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뎅그러니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모두가 퇴근한 빈 사무실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속이 쓰렸다. 머릿속에 같은 그림을 넣고 하하 호호 서로를 다독이며 올해 영화제를 준비했던 동료들의 얼굴과 1년 내내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었을 관객 여러분의 마음이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에도 올해 영화제를 예년과 같은 모습으로 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상황이 심각해질 때마다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멈추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나와 동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최선으로 관객 여러분과 만나고 싶었다. 결국 무주에서 여러분을 직접 만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이미 공개된 올해의 프로그램은 올해 무주산골영화제가, 그리고 나와 동료들이 전력을 다해 관객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적지 않은 예산으로 준비한 것들을 무주에서 예정된 기간에 보여줄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동료들과 함께 고심 끝에 찾아낸 무주산골영화제의 답은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다. 본 영화제 기간에는 현장성을 살릴 수 있는 영화/토크/공연 프로그램을 모아 온라인 라이브 생방송을 '관객 없이 비공개로' 영화제를 진행하고, 나머지 모든 상영작은 프로그램 별로 묶어 영화제 이후 코로나19 사태의 추이에 따라 무주 및 전국에서 오프라인 특별전과 기획전으로 형태로 영화제를 진행하려고 한다. 어렵게 찾아낸 이 답 속에는 ‘영화제’란 ‘영화’를 보는 ‘관객’과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근간으로 하는 축제이고, ‘관객’과 ‘극장’과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든 ‘창작자’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그 마법 같은 순간과 펄떡거리는 에너지가 ‘영화제’를 추동하는 힘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담겨 있다. 또한 1년 내내 무주산골영화제를 기다려준 여러분들을 위한 나와 동료들의 고마움과 애정도 함께 담겨 있다.  코로나19는 영화와 극장, 극장과 관객 사이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영화제들의 뒷덜미를 잡아 주저앉힌 다음, 영화제들의 멱살을 하나씩 틀어쥐고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너는 정체가 뭐였냐고, 너에게 영화는, 관객은 도대체 어떤 의미냐고, 이래도 계속해보겠냐고, 이런 상황에서 넌 뭘 지키고 뭘 포기할 거냐고 거칠게 묻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극장과 관객들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성장해온 한국의 영화제들은 갑자기 손발이 묶인 채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코로나 시대가 던지는 거친 질문에 답을 내놓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영화제들마다 내놓고 있는 답들이 그렇게 다양하거나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영화제들이 찾아낸 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각 영화제들이 처한 물리적 상황에서부터 영화와 관객에 대한 철학, 그리고 각자의 정체성과 영화제 방향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각 영화제들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까지 꽤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찾아낸 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를 통째로 도둑질해가려고 했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우리의 방식으로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비교적 잘 해오던 영화제가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영화제를 낭비라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의 무례한 언어 속에서 때론 절망하기도 했지만 나와 동료들은 여러분들에게 올해 준비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차례차례 선보일 생각이다. 아마도 5일이면 끝날 행사를 몇 개월에 나누어 하려면 더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관객 여러분을 믿고 이 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가끔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 공지 밑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영화제에 대한 애정, 무주에 갈 수 없는 아쉬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에 갑자기 가지 못하게 된 상실감. 분산 개최 결정에 대한 이해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여러분들의 댓글을 꼭꼭 씹어 먹는다. 아마도 관객 여러분의 이런 애정과 관심이 지속되는 한 무주산골영화제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4월 중순, 지난 7년간 매년 그랬듯, 올해 영화제를 여는 글을 썼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고, 글의 톤과 내용은 확진자 수에 따라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졌다. 마지막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수정을 거듭하며 역대급으로 힘들게 완성했던 글이었다. (http://bitly.kr/sUp7Fa3jJU​)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났다. 그 사이 영화제의 개최 방식이 바뀌었지만 코로나19의 상황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롤러코스터처럼 호전됐다 악화됐다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 담은 나와 동료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제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 4일 오후 7시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개막식으로 여덟 번째 영화 소풍의 첫 발을 뗀다. 그리고 4일간 일부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영화/토크/공연 프로그램이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간다. 1년 만의 첫 만남이 비록 온라인이라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개최 방식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응원하고 지지해 준 상영작 감독, 배우들을 비롯한 모든 창작자들과 제작/배급사 관계자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 시간표 -> http://bitly.kr/mow2739xlT​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공식 유튜브 youtube.com/user/mujufilmfestival📌공식 네이버TV tv.naver.com/mjff  

2020_산골프로그래머의 첫 번째 편지

2020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첫 번째 편지 모습이 왕관을 닮았다 하여 코로나, 2019년에 발생했다고 하여 19, 이름하여 코로나19,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의 갑작스런 창궐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현실이 되는 걸 보고 있자니 현실이 영화 같고 영화가 현실 같은 이상하고 아득한 느낌이다. 치료제가 없고, 감염성이 높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당연히 두렵다. 그러나 진짜 두려운 건 느껴본 적 없는 불안과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와 혐오다. 진짜 지옥은 원래 사람이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저기서 우리의 민낯을 목격하며 잠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통계를 신뢰하고, 확실한 출구의 존재를 확인한 최근에야 비로소 마음을 진정시키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공개되는 확진자 수 발표를 확인하며 이 불확실한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작디작은 바이러스가 앗아간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친한 친구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기분 좋게 수다를 떨 수 없게 되었고,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마음 편히 점심을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사람이 있으면 살짝 긴장해야 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기침을 하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애인과 소풍을 떠나려니 꺼림직하고, 가족 또는 친구와의 해외여행은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거나 불금을 맞아 술집이나 클럽에 가기도 어렵고, 친구와 PC방이나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일도,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웃고 떠들며 함께 영화나 공연을 보는 일도 꺼려지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일일 텐데, 현실에선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도 함께 늘려놓은 느낌이다. 우린 이렇게 갑자기 너무 소소하고 평범해서 소중한 줄조차 몰랐던 일상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젠 단순히 일상을 넘어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분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를 공개했다. 2주 전만 해도 유난히 맘에 들었던 올해의 포스터를 예정된 일정대로 공개할 수 있을까, 혹시 행사를 연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악화되던 상황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우린 예정대로 이 따뜻한 포스터를 여러분께 선보일 수 있었다. 올해의 포스터는 그동안 선보인 8개의 포스터 중에서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일사천리로 가장 쉽고 빠르게 결정된 포스터였다. 첫 스케치를 보았을 때 직사각형의 공간을 평면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앞뒤를 활용하여 깊이와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구도와 포스터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좋았다. 이후 채색이 되고 김영준 작가가 의도했던 디테일이 더해지자 스케치는 초록빛의 시원한 생명력과 영화적 상상력이 펄떡거리는 지금의 포스터가 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어렵지 않은 사람이 없는 힘든 시기에 나온 올해의 포스터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자세로 한 곳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영화와 자연, 그리고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주에서의 그 아름다운 시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 따뜻한 희망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올해의 프로그램에는 몇 가지 새로운 기획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예년처럼 프로그램의 큰 변화나 새롭게 시도되는 큰 기획은 거의 없다. 지난 몇 년간 무주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상영편수와 공연횟수의 증가를 최소화하면서도 깊이를 만들고, 프로그램과 관객의 접촉 면적을 넓히는 데 집중해왔다. 이제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갈 길을 살펴야 할 때가 되었다. 기본 프로그램의 구성과 내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몸집을 키우기보다 속을 꽉 채워보려고 한다. 따라서 올해의 일차 목표는 몇 년간 확장시켜 온 프로그램의 안정화와 내실화다.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영화제를 떠받치는 뼈대가 되는 기본 프로그램의 내부가 촘촘하고 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운 프로그램을 가져다 붙여도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새로움과 화려함이 허약한 내부를 감추는 방식으로 활용되어선 안된다.    하지만 운영의 측면에선 2013년 무주산골영화제가 생긴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 하나가 실행될 예정인데, 4월 중으로 공지될 것이다. 몇 년 동안 고민하고 몇 개월에 걸쳐 다듬어서 이번 영화제부터 실행하기로 한 이 변화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지속을 위해 무주산골영화제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을 위해 꼭 가야 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다소간의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여러분의 배려와 참여로 잘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무주산골영화제는 앞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보여줄 반응이 사뭇 궁금하고 기대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폐막일 다음 날 도시 내에 확진자가 나와 다행히도, 그렇지만 간신히 영화제를 마친 베를린영화제를 마지막으로 전 세계 상반기 개최 예정이던 해외 영화제를 거의 다 취소 또는 연기시켰다. 베를린 이후 열리는 첫 미국의 메이저 영화제인 미국의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는 행사를 취소하면서 상근직원의 절반을 해고했다. 그리고 따로 심사를 진행하여 며칠 전에 경쟁부문의 수상작만을 따로 발표했다. 유럽 최대의 다큐멘터리영화제 중 하나인 코펜하겐다큐멘터리영화제(CPH:DOX)는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하여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영화제를 온라인 영화제로 전환하여 개최했다. 한국의 영화제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인데, 얼마 전부터 온라인 상영을 통해 첫 공개된 작품들의 리뷰가 스크린 데일리를 비롯한 해외 영화 매체에 업데이트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세계 최대, 최고의 영화제인 칸영화제가 행사의 연기 개최를 발표했다. 6월 말 7월 초 개최를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금 이른 듯하지만 해외의 주요 영화 전문매체들은 벌써 코로나19 시대 맞아 직격탄을 맞은 영화제의 변화와 향후 전망에 대한 특집 기사를 내보기 시작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상반기에 개최 예정이었던 한국의 영화제들도 대부분 연기되었다. 5월 말에 개최되는 전주국제영화제 말고는 4월과 5월에 개최되는 국내 영화제는 이제 없다. 덕분에 무주산골영화제는 뜻하지 않게 상반기 최대 영화제인 전주국제영화제와 3일이 겹치게 되었다. 사실상 전 기간이 겹치게 된 셈이다. 누군가는 양해라고 하고, 누군가는 울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발목 잡혔다고 하지만 모두의 일상이 바이러스에게 저당 잡혀 버린 이 전대미문의 시간에 영화제의 개최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다행스러운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런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뿐이다.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에 비할 순 없겠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의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영화제가 어쩔 수 없이 열리지 못한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한다. 따라서 영화제의 개최는 우리 일상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이 와중에 관객 여러분과 함께 할 여덟 번째 영화 소풍을 준비하는 나와 우리 동료들의 노력은 우리의 일상을 빨리 되돌려 받기 위한 노력이라고 믿고 싶다. 우린 결과가 어떻든 포스터 속 인물들처럼 한 곳을 보기로 했다. 그 시선의 끝엔 따뜻한 희망이, 관객 여러분이, 그리고 영화가 있다. 그 희망은, 우리의 바람은 현실이 될 것이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이렇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염원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씩 모아 여러분들과 다시 만날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들도 그러면 좋겠다. 관객 여러분을 만나는 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일 같다. 멋진 동료들과 함께 여러분들이 와서 마음껏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행사 공간을 예쁘게 꾸미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6월 4일부터다. 모두의 건강과 무탈한 일상을 기원한다.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 4일(목)일부터 6월 8일(월)까지 개최된다. 그리고 올해의 영화와 공연 프로그램은 4월 마지막 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2019_산골프로그래머의 세 번째 편지

2019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 ​8년 전 토론토영화제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모든 가게에 불이 꺼져 있는데, 한 군데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팬케이크를 파는 식당이었다. 메뉴가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식당에 들어섰다. 꽤 넓은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여직원이 메모지를 들고 터벅터벅 다가왔다. “Hi!” 그래도 그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의 인사에 문득 무심코 한마디를 붙여 답했다. “Hi, how are you doing today?” 직원은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미소와 함께 답했다. “I’m good. Thank you for asking.” 그날 그의 얼굴도, 뭘 주문해서 얼마나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물어봐 줘서 고맙다”던 그의 답변은 이상하게 마음 깊숙한 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말은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심코 던진 안부 인사가 누군가에겐 예상치 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난 아직도 여전히 12시가 넘어 퇴근할 때면 종종 그날 밤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2013년부터 동료들과 함께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쪼개고 쪼개, 정말로 최.선.을. 다.해. 지속시켜 온 이 작은 영화제가 그날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라고 물었던, 무심했지만 예기치 않게 위로의 마음을 담아냈던 그 질문과 ’질문해줘서 고맙다‘던 바로 그 대답 같은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난, 그리고 나의 동료들은 무주산골영화제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대는, 그래서 시끌벅적하고 떠들썩하고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영화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그냥 일상을 살다가, 아름다운 초록빛 자연, 좋은 음악, 특히 좋은 영화가 생각날 때, 소풍 가듯 스윽하고 올 수 있는 그런 영화제, 그렇게 왔다가 문득 영화 한 편, 노래 한 곡, 반짝거리는 초록빛 숲, 싱그러운 바람에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쉴 수 있는 그런 영화제가 되길 소망한다. 그래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애썼다고, 고생했다고. 그러니까 잠깐이지만 여기선 문득 웃어도 또는 울어도 된다고,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여러분에게 따뜻한 안부를 건네는 그런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물어봐 줘서 고마웠다’는 무심한 듯 따뜻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일곱 번째 영화 소풍이 끝났다. 느닷없는 장대비에 무주산골영화제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네 편이나 되는 영화의 상영을 취소해야 했지만, 그래도 여러분 덕분에 산골 무주는 잠깐이었지만 활기와 생동감 넘치는 산골 동네가 될 수 있었다. 올해도 물론 쉽지 않았지만, 여러분 덕분에 웃었고, 여러분 덕분에 울었다. 그리고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다. 무주산골영화제에 왔던 여러분도 우리의 마음과 같았다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반가운 친구처럼 그렇게 내년 6월 초, 산골 무주에서 다시 여러분과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여러분과 함께 키워낸 이 작은 영화제는 반드시 더 멋진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2019_산골프로그래머의 두 번째 편지

​2019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두 번째 편지​​​​ 매년 무주산골영화제에 오려는 새로운 관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걸 느끼고 있는데, 올해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많아서인지 예년에 비해 조금 더 많은 분들이 처음으로 무주에 오려고 준비 중인 것 같다. 가끔 보면 무주가 전라도에 있는지 경상도에 있는지 충청도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분들도 많고, 영화제 이름에 ‘산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보니 심리적으로 굉장히 먼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주가 무슨 대중교통도 없는 오지 마을인 줄 아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무주에 가서 어디서 묵고, 어디서 자고,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아 난감해하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어차피 무주에 오기 위해선 여러분이 직접 부지런히 손품을 팔아야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몇 가지를 드려볼까 한다. 이번 편지는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 처음 오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이미 영화제 참석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 편지를 그냥 건너뛰셔도 되겠다.​  1. 모든 영화 상영 및 공연은 모두 무료. 선착순 입장. 자유석무주산골영화제의 모든 영화와 공연은 무료다. 따로 티켓도 없다. 원하는 영화가 상영되고, 원하는 공연을 하는 장소에 시작 시간보다 좀 빨리 가면 된다. 야외상영과 야외공연이 이루어지는 등나무운동장, 향로산 자연휴양림, 덕유산 국립공원 내 대집회장은 넓은 야외 잔디밭이기 때문에 웬만큼 많은 관객이 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실내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분들은 조금 일찍 가서 상영관 앞에 줄을 서야 한다. 줄이 너무 길 경우, 좌석 상황에 따라 입장 전 사전 고지가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사람이 너무 많으면 영화를 못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많진 않다. 영화 시작 전 현장 상황에 따라 15분에서 20분부터 입장이 시작되고, 입장하는 순으로 원하는 좌석에 앉으면 된다. 따로 예약 시스템을 운용하지 않는 건 예산의 문제이기도 하고, 산골영화관을 제외하면 일반 극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부지런한 소수의 마니아 관객들이 좌석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어서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당부드린다. 2. 대중교통으로 무주에 오는 법무주까지 오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조금 피곤해도 자가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가 차량 이용이 어려운 분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어디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목적지에 가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다. 그런데 무주군은 인구 2만 3천여 명의 소도시다 보니 운행하는 버스가 시외버스 뿐인데 운행 횟수 자체가 적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무주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편도로 각각 일일 5회만 운행된다. 다른 지역을 오가는 버스는 더 적다. 그런데, 무주에서 편도로 일일 20회 가량 시외버스가 운행되는 도시가 있다. 어디일까? 바로 대전이다. 무주는 대전이 일일 생활권이다. 무주사람들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대전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주에 오실 분들 중 마땅한 대중교통을 찾지 못하는 분들은 어떻게든 일단 대전까지 오시면 된다. 특히 대전터미널은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같이 이용할 수 있는 복합터미널이므로 KTX나 기차보다 고속버스 또는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대전에 온다면, 이동 시간을 조금 더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주에 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 _ 무주산골영화제의 시외셔틀무주산골영화제는 관객들이 불편한 교통 문제에 조금이나 도움을 드리기 위해 일반 버스 가격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3년 전부터 시외셔틀버스를 운영 중이다. 서울(서울역), 서울(양재), 대전, 전주, 부산, 4개 도시 5개소에서 영화제 기간 일일 왕복 1회 운영된다. 예매 마감은 5월 31일 오늘 오후 6시까지니, 혹시라도 이용하실 분들은 서둘러 예매하시기 바란다. 자세한 사항은 http://mjff.or.kr/kor/addon/10000001/page.asp?page_num=4330 참고하면 된다.   3. 두툼한 겉옷과 담요, 돗자리는 필수무주산골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해가 지고 나서 시작되는 야외상영 프로그램인데, 무주읍에 있는 등나무운동장, 향로산 자연휴양림, 덕유산 국립공원 내 대집회장, 이 세 곳에서 이루어진다. 요즘은 기후 변화로 매년 기온이 오른다고 하지만, 무주는 전체적으로 지대가 높은 편이고, 산골이라 해가 지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처음에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던 분들도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쯤 지나면 슬슬 한기를 느낀다. 특히 해발 약 700여m에서 위치한 덕유산 대집회장은 새벽 2시까지 영화가 상영되기 때문에 더 추울 수 있다. 따라서 야외에서 밤늦게, 또는 새벽까지 영화를 보실 분들은 담요나 이불, 또는 겨울 패딩 등등 추위가 찾아왔을 때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매년 그렇게 당부의 말씀을 드려도 무주의 밤 추위를 만만히 보고 오셨다가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꼭 있다. 그리고 준비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두툼한 돗자리다. 올해에는 향로산 자연휴양림에도, 작년까지 의자를 두었던 등나무운동장에도 의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의자를 깔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야외상영을 하는 곳은 어디든 밤 10시가 넘어가면 땅밑에선 습기가 올라온다. 그러니 엉덩이로 올라오는 한기와 습기를 막아줄 두툼한 돗자리 준비한다면 훨씬 더 편안하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4. 극장과 극장 사이의 거리무주산골영화제의 실내상영관은 모두 무주 읍내에 있다. 그래서 실내상영관에서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일단 무주예체문화관이나 예체문화관 바로 옆에 있는 등나무운동장으로 오시면 된다. 내비게이션에서도 쉽게 검색되고, 영화제 시외셔틀이 도착하는 곳도 이 근처고, 무주공용버스터미널도 이 근처다. 영화제 상영관인 산골영화관과 다목적홀은 예체문화관 안에 있고, 무주전통생활문화체험관은 예체문화관에서 걸어서 10~15분 정도다. 또 하나의 상영관인 전통문화의 집은 무주군청 옆에 있는데, 예체문화관에서 길가로 나가 길을 건너고 다리를 건너면 된다. 예체문화관에서 역시 걸어서 10~15분이다. 실내상영관을 오갈 때에는 자가 차량이 있어도 차량보다 도보로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 5. 「무주가 어디 볼 데가 있습니까?」 (정원선 지음, 해토)대부분 지방 도시를 다루는 책들은 거의 관광안내서뿐이다. 그러나 관광안내서는 오랫동안 곁에 두고 볼 수 없다. 지역의 관광 관련 정보는 매년 변하기 때문이다. 처음 무주와 관련된 책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생각했던 건 이런 기존의 관광안내서와는 다른, 곁에 좀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무주라는 지역을 다룬 지역 에세이였다. 여행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는 단체 여행자의 시선보다 한곳에 오래 머무른 사람에게만 보이는 뭔가가 담긴, 막 이사한 사람이 새로운 공간에 살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풍경과 감성 같은 것들이 담긴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때 서점가를 베스트셀러 매대를 점령했던, 여행지가 주는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감흥을 바탕으로 한 트렌디한 감성의 여행 에세이와는 좀 달랐으면 했다. 그래서 정원선 작가가 이 책을 쓰기로 하고, 시간을 더 달라고 했을 때, 몇 가지 문제로 좀 곤란했지만, 사실 반가웠다. 그렇게 무주 책을 한 권 만들어 보자고 한 지 3년 만에 책이 출간되었다. 여행 관련 에세이를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는 이 책의 특별함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여행지는 여행자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탄생된다. (...) 진짜 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 공감할 수 있는 정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행지 소개의 전범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정원선 작가는 1년 이상 지내본 도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한 장소의 사계절을 모두 체험하며, 사진은 보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제주, 제천, 전주, 세월호에 관한 책을 써온 작가다. 이 책 역시 이 원칙 아래서 쓰여졌다. 무주에 오실 분들이라면 이 책을 미리 구입해 읽어봐도 좋겠고, 영화제 기간에는 기념품 부스에서 구입해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시사인 서평 기사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4673 * 책 구매 링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921875   그리고 영화제 때문에 무주에 왔지만, 잠시 무주를 둘러보거나 무주의 주요 관광지를 가보길 원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숙소 정보가 더 필요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아래 링크를 따라가 보시면 된다.   * 무주관광 https://tour.muju.go.kr/tour/index.do * 무주군 관광 협의회 http://www.mujutour.co.kr/index.sko   무주같이 심리적 거리가 멀고, 뭐가 있을지 잘 판단이 안 되는 곳에 갈 때는 미리 알고 싶은 것이 많다. 부디 이 편지에 담긴 정보가 여러분의 무주 소풍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누군가 나에게 무주산골영화제를 즐기는 팁을 한 가지만 이야기해달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무주에선 조금은 느릿느릿 움직여도 좋다고, 앞만 보고 살던 일상에서 벗어나 하늘도 올려다보고 파란 나뭇잎도 눈으로 쫓아가며 그렇게 마음껏 해찰하면서 걸어다녀도 좋다고, 영화 한 편 덜 봐도 좋고, 공연에 좀 늦어도 괜찮으니 사부작사부작 무주에서의 싱그러운 시간을 마음껏 들이켜도 좋지 않겠냐고. 

2019_산골프로그래머의 첫 번째 편지

2019년 산골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얼마 전 올해의 전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산골 무주를 찾을 여러분을 위한 일곱 번째 프로그램이다. 돌이켜보니 이 영화제와 함께 한 지도 7년이 되었다. 문득 시간이 참 덧없고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25개국 101편. 상영작이 100편을 돌파했다. 예산 없다고 맨날 투덜거리면서 어쩌려고 이러냐는 분들도 있겠지만, 상영작 수가 늘어난 건 올해 처음으로 15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이고, 올해 영화제는 예년과 다르게 폐막일이 일요일이다 보니, 폐막일 저녁까지 영화를 상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편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작년에 비해 12편이 늘어났다. 하지만 징검다리 연휴를 낄 수 없는 내년엔 아무래도 상영편수를 다시 줄여야 할 것이다.   작품 수는 매년 조금 늘어날 수도, 조금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영화제를 준비하며 동료들과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상영 편수나 규모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무주는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도 빤하고, 예산도 빤하기 때문이다. 진짜 고민은 지난 6년간 여러분과 함께 없던 길을 만들어가며 조금씩 성장해온 이 영화제를 지금의 빤한 예산과 빤한 조건에서 어떤 목표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동료들과 이런 고민을 시작한 건, 그러니까 이 작은 영화제로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된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보겠다고 굳이 산 넘고 물 건너 산골 무주까지 찾아와 극장 앞에 서 긴 줄을 만들어준 여러분들 때문이었다. 열정으로 가득한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숫자로 모든 걸 판단하는 분들이 이 작은 영화제를 가만 두었을리 없다. 덕분에 꽤 오랫동안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제’를 생각해왔던 난, 비로소 영화제의 ‘관객’에 대해, 그리고 ‘영화제와 관객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에는 예년에 비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많다. 넥스트 액터, 키즈 스테이지, 치매친화 영화상영,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젝트 <순간>, 에세이 「무주에 어디 볼 데가 있습니까?」(정원선 지음, 해토) 출간 등등. 무슨 대단한 걸 해보려고 작정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고 싶었던 기획들이 몇몇 소액 지원 사업에 덜컥덜컥 뽑히면서 일이 좀 커졌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많던 일은 더 많아졌다. 가끔 어쩌자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고 투덜거리다가 동료들과 서로 손가락질하며 이게 더 너 때문이라고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지만, 올해 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 한층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새롭게 시작되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무주산골영화제의 기존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꽤 꼼꼼한 기획 의도들이 투사되어 있다. 그러나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다 좋을 수 없고, 모든 새로운 기획이라는 게 여러분의 참여 없이는 지속될 수 없으므로, 영화제 기간 산골 무주를 찾을 분들은 그 어느 해보다 올해 영화제 공식 책자를 꼼꼼하게 들여다봐 줄 것을 부탁드린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소중한 영화들을 출품해준 모든 분들과 영화 상영을 허락해준 감독/프로듀서, 수입/배급 관계자들께, 그리고 이 영화제가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년 이 영화제를 함께 이끌고 있는 모든 스텝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무주를 찾을 여러분도, 세상의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 행사장 곳곳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스텝들과 자원활동가 ‘산골친구’들에 의해서 이 영화제가 지탱되고 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다시 산골 무주에 꼼꼼하게 선택되고 정성껏 준비한 영화와 음악이 도착했다. 6월 5일부터 9일까지 딱 5일간, 늘 조용했던 산골 무주는 펄떡거리는 에너지와 생동감이 가득한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고, 이 모든 것을 함께 즐길 여러분으로 인해 일년 중 가장 젊어지는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낯설지 않은 친구처럼 그렇게 다시 만나 이 소란스럽지 않은 생동감을 함께 만들어갈 세상의 모든 영화 여행자들을 또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초대한다.   아래의 링크는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를 여는 글이고, 관객 여러분에게 보내는 일곱 번째 초대장이다. http://mjff.or.kr/kor/addon/10000001/page.asp?page_num=4309  

2018_산골프로그래머의 네 번째 편지

   매년 상영작을 선정하면서 가장 많은 고민을 쏟는 섹션은 “숲” 섹션이다. 고민을 하고 또 할 수밖에 없는 건, ‘숲’ 상영관인 덕유산 국립공원 덕유대 야영장 대집회장의 위치 때문이다. 무주까지 와서도 덕유산국립공원까지 가야하고, 국립공원 입구까지 와도 걸어서 30분, 차로 10분을 또 올라가야 대집회장에 도착할 수 있다. 나라도 여기까지 영화를 보러 오라고 하면 열 번은 고민할 텐데, 전국의 관객들에게 이 먼 곳까지 와서 영화를 보러 오라고 초대하려면 한 번할 고민을 수십번씩 해도 마지막까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영화여야 할까? 나는 여기서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가? 관객들은 여기서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을까? 그렇게 수십 편의 영화들을 놓고 나의 욕망과 관객의 욕망을 상상하면서 접점을 찾아간다. 상영예정작이 잔뜩 붙어있는 사무실 벽에는 숲 섹션에만 20~30여 편의 영화제목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 포스트잇을 띠었다 붙였다가를 반복하면서 요일별 배치와 상영 순서를 함께 고민한다. 그러다가 상영작을 결정하고 배급사로부터 허락을 받으면 마무리가 되지만 배급사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일은 처음부터 다시 반복된다. 올해도 마지막까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3일간의 ‘숲’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올해의 ‘숲’ 프로그램은 두 명의 감독(폴 토마스 앤더슨과 이와이 ��지) 과 두 개의 주제(전쟁과 미술)에 집중한다.  먼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두 편.     언젠가 꼭 무주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올해 소개하게 될 줄 몰랐다. 올해 상반기 그의 또 하나의 걸작 <팬텀 스레드>가 국내 개봉했고, 작년 말 영국에서 시작된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가 얼마 전 서울시네마테크에서 열렸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1970년생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지금까지 8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고 40세가 되기 전에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그의 모든 영화들은 수작 아니면 걸작이다. 현존하는 전 세계 어떤 감독도 자신의 필모그래피 전체 영화의 수준을 이 정도로 유지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 올해에는 그의 총 8편의 장편영화 중 무주에서, 특히 덕유대에서 꼭 상영하고 싶었던 그의 2000년대 대표작 2편을 상영한다. 첫 번째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권태, 삶의 심연을 깊이있게 다루어온 그의 모든 영화 중 가장 경쾌하고 사랑스럽고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 <펀치 드렁크 러브>다. 코미디 배우로 유명했던 아담 샌들러의 정극 연기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담 샌들러가 정극연기를 보여주는 영화는 다 좋아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음악감독 존 브라이언이 음악을 맡은 이 영화는 미국영화평론가들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음악 7위에 선정된 바 있다. 이 영화는 음악도 귀기울여가며 영화를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다음 영화는 9.11 이후 부조리한 미국 사회를 은유했던 수많은 영화 중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함께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걸작 <데어 윌 비 블러드>이다. 이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폴 다노는 말 그대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다. 두 편 모두 영국에서 온 35mm 프린트로 상영되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은 쿠엔틴 타란티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함께 여전히 필름으로 영화작업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영화감독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두 영화의 필름 상영의 기회를 놓치지 않길 권하고 싶다.  올해 ‘숲’속 극장을 통해 소개되는 또 한 명의 감독은 우리에게 <러브레터>로 잘 알려진 이와이 ��지 감독이다.​   이와이 ��지 감독의 작품 세계는 크게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이렇게 둘로 나뉜다. 먼저 ‘화이트 이와이 월드’, 노스텔지어를 기반으로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담아낸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같은 영화들이 속한 세계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아름답고 슬픈 멜로 영화로 기억되는 <러브레터>는 여주인공 입장에서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랑 이야기다. 이와이 ��지의 ‘화이트 월드’에 속하는 영화가 다루는 사랑은 다 이런 식이다. 사랑은 있어도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다. 이와이 감독은 사랑을 부정하지 않지만 사랑을 잘 믿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이와이 ��지의 진심이 담긴 세계는 단편영화 <언두>를 시작으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거쳐 최신작 <립반 윙클의 신부>에 이르는 무국적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다크 이와이 월드’라고 할 수 있다. 이와이 감독은 이 어두운 세계를 영화에 담아낸 때에 비로소 사랑을 믿게 되는 것 같다. 올해 무주에서 선보이는 이와이 ��지의 세 편의 영화는 ‘이와이 월드’의 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1993)를 시작으로 ‘다크 이와이 월드’의 정점에 있는 2편의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을 상영한다. 특히 이 중 <스왈로우테일...>는 일본에서 어렵게 가져온 35mm 필름으로 상영한다. <릴리 슈슈...>를 일요일 새벽 마지막 상영에 배치시킨 걸 두고 월요일까지 관객을 붙들어두려고 작정한 주최 측의 장난질(?)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 분이 있었다. 해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일요일에 배치한 건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든 관객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기보다 이와이 ��지, 특히 그의 어두운 세계를 사랑하는 팬들이 좋아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팬들이 오붓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고, <릴리 슈슈...>를 마지막에 상영하는 이유는 세 편을 연대순으로 상영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릴리 슈슈..>가 끝날 때 몇 명의 관객이 남아있을까를 두고 사무국장과 동료들 밥사주기 내기를 했다. 영화가 끝날 때 25명보다 많은 관객이 남아있으면 이긴다. 난 우리 무주산골영화제 관객들을 믿는다. 3년 전 그 추운 밤, <미포 미드나잇>이 끝날 때에도 50명의 관객이 자리를 지켜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각 1편을 상영한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이 무주에서 상영하길 원했던 몇 편의 영화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편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였다. ‘다카하타 이사오’ 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면, <엄마찾아 삼만리>, <미래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같은 작품을 연출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회를 봐서 <반딧불의 묘>를 상영하고 싶었는데, 올해 4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원래 다른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감독을 추모하는 의미로 주저없이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반딧불의 묘>는 그의 모든 영화 중 최고의 영화이자 장편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와 함께 우리에게 「눈사람 아저씨」로 잘 알려진 동화작가 레이먼드 브릭스 부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에델과 어니스트>를 상영한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림체를 살려내기 위해 174명의 전문가의 핸드 드로잉과 채색 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9년간의 작업 기간을 거쳐 완성된 이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부모 세대에 대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헌사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이 두 편의 애니메이션은 평화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올해 ‘숲’ 프로그램 중 가장 관객이 반응이 궁금했지만 관객들이 별로 응답을 받지 않아 실제 상영장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올지 궁금한 미술과 회화를 주제로 한 2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첫 영화는 전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놀라운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다. 작년 하반기 최고 흥행작 중 한 편이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만큼은 꼭 덕유대에서 상영해보고 싶었다. 사실, 극장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작을 덕유대에서 상영해본 적이 없어서 고민이 됐다. 고민하다가 올해만 영화제하고 안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관객 여러분이 얼마나 좋아해줄지 알고 싶었다. 이 영화제는 모든 영화가 무료여서 실제 영화제가 시작될 때까지 도대체 관객이 얼마나 올지 알 수가 없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선 어떤 때는 상영 직전까지 걱정을 멈출 수가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러빙 빈센트>를 상영하기로 하고, 짝이 될 만한 미술에 대한 영화를 찾았다. 몇 개의 영화를 고려했는데, 마땅한 영화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결국 처음 생각했던 피터 웨버 감독의 데뷔작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영화는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동명의 그림에 대한 영화다. 고흐가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라면 베르메르는 램브란트와 함께 미술사에서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였던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다. 고흐는 아마도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며 공부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우유를 따르는 여인’과 함께 베르메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신비한 매력 때문에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리는데, 매혹적인 표정의 여인의 모습만 그려진 이 그림에는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나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 이 그림에 대한 소설과 영화가 나온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 한번 엎어졌던 영화다. 원래 주연을 맡았던 케이트 허드슨의 하차로 엎어졌던 이 영화는 장편 연출의 경험이 없었던 피터 웨버 감독이 연출을 맡고, 당시 17세였던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합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얼굴에서 빛이 나는 앳된 모습의 스칼렛 요한슨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 흔한 섹스신이나 노출씬 하나 없는데도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관능과 팽팽한 심리적 긴장이다. 이 섹시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건, 베르메르의 회화적 특징을 되살려낸 에두아르도 세라의 촬영과 현재 전 세계 톱클래스 음악감독 중 하나가 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맡은 영화음악이다. 이 두 편의 연속 상영은 200여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살았던 당대 최고의 네덜란드 출신의 두 대가의 그림과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고백하자면, 올해 ‘숲’ 프로그램이 아주 만족스럽진 않다. 2년간 공들여 상영하려고 노력했던 영화 2편을 상영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영하고 싶었고, 올해는 상영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상영 허락을 받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당하는 일도, 가끔씩 무시당하는 일도 이젠 익숙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올해가 안 되면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뭐 괜찮다. 산골에 온 이후 한 번에 되는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고? 미안하지만 이 두 편의 영화는 언젠가 상영될 때까지 비밀이다. 내년 프로그램도 기대해달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영하는 9편의 영화는 모두 훌륭한 영화들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볼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해발 700m, 스크린 너머로 산능선이 보이는, 영화를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는,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숲속 극장에서 펼쳐지는 3일간의 영화 ‘밤’ 소풍에 관객 여러분을 초대한다.  

2018_산골프로그래머의 세 번째 편지

이제 영화제가 10여일 남았다. 무주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관객들은 어떤 영화를 볼지 이미 결정했거나, 아니면 어떤 영화를 보는 게 좋을지 ‘영화 소풍 안내서’를 뒤적거리면서 고민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올해 영화제 상영작 중 상대적으로 여러분들이 잘 모를만한 영화 중에서 영화를 선택할 때 적극적으로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2017년 영화산업결산을 보면, 한 해 동안 수입된 영화 편수가 1437편, 실질 개봉편수가 456편이다. 하루에 최소 한 편, 일주일에 약 9편 정도가 극장에서 개봉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900편이 넘는 영화들이 실질적으로 개봉을 못하고, 디지털(IPTV) 개봉 시장으로 바로 간다는 이야기인데, 에로영화의 숫자를 감안해도 상당한 숫자다. 그런데 수입되었지만 극장개봉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영화들을 찾아보면, 조사하고 볼 영화를 골라내는데 꽤 공을 들여야 하긴 하지만, 의외의 보석 같은 영화들을 만나게 된다. 무주산골영화제는 몇 년 전부터 이렇게 수입된 후 다양한 이유로 극장 개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디지털(IPTV) 시장으로 직행한 영화 중 수작들을 골라 상영해왔고, 올해에는 4편을 상영한다.    #[1/4] <어떤 여인들 Certain Women>(미국)_dir.켈리 레이차트먼저, 첫 번째 영화는 동시대 영화 미학의 최전선에서 전 세계 평론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미국 출신 켈리 레이차트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 <어떤 여자들>이다. 데뷔작 <초원의 빛>을 시작으로 <올드 조이>, <웬디와 루시>로 점차 주목을 받은 뒤 여성주의 웨스턴 <믹의 지름길>로 전 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여성의 시선으로 미국의 풍경을 담아내온 켈리 레이차트(1964년생) 감독은 올해 무주에서 특집으로 소개되는 영국의 안드레아 아놀드(1961년생)와 린 램지(1969년생), 독일의 마렌 아데(1976년생), 프랑스의 미아 한센 러브(1981년생), 아르헨티나의 루크레시아 마르텔(1966년생) 등과 함께 동시대 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여성감독 중 한 명이다. 2007년 영국 문예지가 선정한 “미국 문단을 이끌 최고의 젊은 작가‘에 선정된 바 있는 마일리 멜로이의 소설을 각색한 <어떤 여자들>은 미국 몬태나 주의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네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마일리 멜로이의 단편소설집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수만 있다면」은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되어 있다.) 이 영화는 현재 국내 IPTV에서 볼 수 있지만, 극장상영판권이 여전히 해외에 있어 무주 상영을 위해 해외에서 판권처리를 해야 했다. 아마 무주산골영화제 이후에는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극장에서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주에서는 가장 상영조건이 좋은 산골영화관에서 상영한다. 영화 상영 후에는 허문영 평론가의 산골토크가 준비되어 있다. 많은 분들이 봐주면 좋겠다.※ 상영 정보 :　https://goo.gl/6u3FZH ※ 예고편 : https://youtu.be/TU0caOeu_Ag    #[2/4] <아, 황야 Wilderness>(일본)_dir.키시 요시유키두 번째 영화는 <아, 황야>다. 이 영화 길다. 300분, 5시간이 조금 넘는다. 이 영화 한 편을 보려면 낮 시간을 통째로 내야 한다. 영화 길이 때문에 극장 개봉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몇 가지 면에서 소노 시온의 데뷔작 <러브 익스포져>를 떠올렸다. 언제 기회가 되면 무주에서 상영해볼 생각인데, <러브 익스포져>가 사이비 종교 문제를 통해 B급 정서로 동시대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았다면, <아, 황야>는 2021년 일본 근 미래를 배경으로 각자의 사연으로 권투를 시작하게 된 두 청년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동시대 일본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훨씬 더 진지한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키시 요시유키라는 낯선 이름의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오랜 기간 TV 다큐멘터리와 TV 영화를 연출했고, <이중생활>이라는 장편영화도 연출했다, <아, 황야>는 영화로만 따지면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인 셈인데, 300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복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두 청년이 복싱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청춘의 펄떡거리는 에너지, 일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버무려 이야기를 끌고나가고, 결국 관객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특히 일본의 대세배우 스다 마사키, 한국의 연기파 배우 양익준의 멋진 연기 앙상블은 이 영화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키시 요시유키. 전작을 보지 못해 판단하기 좀 어렵지만, 앞으로 일본영화에서 이 이름을 종종 듣게 될 것 같다. 영화 상영 후에는 양익준 감독이 직접 상영관을 찾아 백은하 영화전문기자의 진행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렇게 긴 영화는 극장이 아니면 집중해서 한 번에 끝까지 보기 쉽지 않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권한다.※ 상영 정보 : https://goo.gl/DrSQZq※ 예고편: https://youtu.be/XMujeofoTGM)    #[3/4] <스튜던트 The Student>(러시아)_dir.키릴 세레브렌니코프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화제작 중 한 편은 한국의 신인배우 유태오가 2000:1의 경쟁율을 뚫고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가수 빅토르 최를 연기한 영화 <레토>였다. 이 영화의 감독 이름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2001년부터 연극을 연출해온 연극연출가이며, <레토>를 포함하여 총 8편의 영화를 연출하여 칸, 로카르노, 로마 등 주로 해외의 중요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은 베테랑 영화감독이다. (현재는 자신이 디렉터로 있었던 고골 센터 운영자금 횡령혐의로 자택구금 중이다. 그래서 칸영화제에도 못 갔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레토>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2016년에 연출한 일곱 번째 영화가 작년에 한국에 수입되어 IPTV 시장으로 직행했다. 그 영화가 바로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스튜던트>다. 마리우스 본 마옌버그의 희곡 ‘순교자’를 영화화 한 작품으로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서 상영되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영화는 종교적 믿음과 맹신의 본질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믿음이 어떻게 보수적인 가치로 이어지고, 맹신을 기반으로 한 자가당착적인 보수적 가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키릴 감독의 최신작 <레토>는 전작 <스튜던트>와 달리, 칸영화제에서 얻은 관심과 한국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 빅토르 최가 주인공이라는 점 때문에 조만간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레토>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궁금하다면, 먼저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스튜던트>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물론, IP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 상영 정보 : https://goo.gl/HNFkcb ※ 예고편 : https://youtu.be/zqEg_LZBCzU     #[4/4] <사랑에 빠진 여자 United States of Love>(폴란드,스웨덴)_dir.토마스 바실레프스키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폴란드 출신의 토마스 바실레프스키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사랑에 빠진 여자>다. 영어제목이 United States of Love인데, 한글 제목만 보면 좀 야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어둠의 경로에서 야한 영화로 포장되어 돌아다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 201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각본상)을 수상한 만만치 않은 영화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대로 여성의 욕망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배경은 1990년 폴란드의 작은 마을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기 직전의 시기, 그러니까 전 세계를 양분했던 이데올로기 중 하나였던 공산주의가 무너졌던 시기다. 감독은 거대한 역사 변화의 변두리에서 감독의 엄마 세대들이 느꼈을 복잡한 감정과 욕망을 네 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담아낸다. 영화는 절제되고 우울하면서도 건조한 유머들로 가득하고, 갑자기 비수처럼 가슴 한 켠을 훅 밀고 들어오는 차가운 동유럽 영화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드라마트루기 측면에서도 그렇고, 시각적으로도 상당한 공을 들인 구조적인 영화인데, 장면 장면이 은유적이라기보다 평범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진행되고 모여, 큰 이야기가 되면 비로소 전체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 사건들은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서 교차하거나 얽혀있고, 시간도 뒤틀려 있어 영화를 볼 때 조금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거의 컬러를 표백한 듯한 푸른 파스텔 톤의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데, 몇몇 장면은 로이 앤더슨 Roy Andersson 과 울리히 사이들 Ulrich Seidl의 영화가 떠오른다. 특히 이 영화에서 촬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올렉 무투 Oleg Mutu 다. 루마니아의 뉴 웨이브 크리스티 푸이유와 크리스티안 문주,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여러 작품들을 촬영한 유럽 최고의 촬영감독 중 한 명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이야기와 이미지가 흥미롭게 결합된 젊은 감독의 야심 넘치는 폴란드 영화다.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바실레프스키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다. ※ 상영 정보 : https://goo.gl/Cg3AxQ※ 예고편 : https://youtu.be/bTmBP-tVEZc이 네 편의 영화는 포털에서도 영화에 대한 간략한 정보 말고 다른 정보를 찾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4편 모두 꽤 괜찮은 영화들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모험을 즐기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영화산책자라면 이 4편의 영화 중 한 편을 골라 도전해 보는 것도 무주산골영화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보태기) 그런데, 여기서 끝내려니, 영화 한 편이 눈에 밟혀 끝내질 못하겠다. 한 편만 더 소개하겠다.     #<뉴턴 Newton>(인도) dir. 아미트 마수카매년 수입되지 않은 괜찮은 영화 몇 편을 상영했는데, 올해에는 아시아 영화 한 편 만 상영하기로 했다. 작년 12월 심사차 인도 케랄라국제영화제에 갔다가 보게 된 영화인데, 아미트 마수카 감독의 <뉴턴>이다. 인도영화하면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발리우드 영화만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꽤 재미있다. 원칙주의자인 신입 공무원 뉴턴이 인도 중부 시골의 투표소의 관리를 맡아 좌충우돌하며 투표를 진행하는 과정을 담은 코미디 영화로, 매우 지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주제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다. 매년 전 세계 영화제와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는 아시아 영화들이 몇 편씩 나오는데, <뉴턴>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 포럼에서 첫 상영된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중요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인도 영화 중 힌디어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63회 필름페어어워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7 아시아태평양 스크린 어워드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재미있어도 수입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시간되는 분들은 꼭 보길 권하고 싶다.※ <뉴턴> 상영 정보 : https://goo.gl/xUW8s2 ※ 예고편 : https://youtu.be/yU6zMPFd4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