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둘째 딸 진영, 이렇게 한 가족이 있다. 집에선 주로 옆으로 누워 TV만 보다가 가끔 술 먹는 게 낙인 공장을 운영하는 무뚝뚝한 아빠, 서른이 넘도록 취업 준비를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둘째 딸 진영, 엄마는 이 데면데면한 부녀 관계를 이어주는 존재다. 동창회 한번 가는 것도 아빠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엄마지만, 그는 아빠의 공장과 집안의 경제를 함께 책임지고 있다. 엄마는 아빠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아빠는 그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흐르다>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갑작스럽게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엄마의 빈자리는 집안과 공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엄마가 가려주던 아빠의 무능이 정체를 드러낸다. 공장은 위기에 빠지고, 둘째 딸의 미래도 함께 불투명해진다. 진영은 아버지 일을 돕는 것과 계획대로 해외로 나가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영화는 진영의 뒤를 따라가며 아빠의 그림자처럼 살아온 엄마가 실은 가정의 중심이자 실질적인 동력이었음을 확인시킨다. 그리고 엄마의 부재 때문에 폐허가 되어버린 가부장제의 유산 속에서 어렵게 자신의 길을 선택해가는 딸의 감정 변화를 물 흐르듯 담아내며 관객의 마음 깊은 곳에 공명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