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인 요휘와 보영은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한 여정에서 둘은 이별한다. 홍콩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낯선 땅에서 착실하게 살아가는 요휘에게 어느 날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보영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다. 왕가위 감독의 1997년작으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양조위와 고인이 된 장국영이 동성 연인을 연기해 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던 홍콩의 불안한 심리를 은유하는 이 영화는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관객의 마음과 귀를 단번에 사로잡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왕가위 월드의 시작을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왕가위와 장국영이 보여준 최고의 연기 앙상블은 그 자체로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촬영하며 시나리오를 썼던 왕가위의 연출 스타일로 인해 영화에 사용되지 못한 장면들은 이후에 완성된 일종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제로디그리>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