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원래 화가인데,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제는 피아니스트도 되려고 하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오재형이다. 그는 물건들로 가득한 방에서 피아노를 한쪽 벽 중앙으로 옮겨 붙인 후 피아노 덮개와 상판, 건반 덮개를 뜯어내고 피아노 양쪽으로 커튼을 쳐 빛을 가리고, 천장에는 프로젝터를, 피아노 위에는 마이크를 설치한다. 그리고 피아노 건반 쪽을 향해 파도와 파도 소리가 담긴 영상을 플레이하고 오재형 감독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영상과 소리와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인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 오디오 비주얼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오재형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피아노 프리즘>은 아티스트 오재형의 일상과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실 이미지들, 피아노를 배우고 단독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과정을 번갈아 배치하고, 그 위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얹어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영상에 음악이 얹어질 때마다 영상은 생명력을 부여받고, 예술작품으로 변모한다. 말하자면 <피아노 프리즘>은 피아노 연주를 더해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해가는 예술가 오재형의 작업 과정 전반을 담아낸 예술가에 관한 인물 다큐멘터리면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담아낸 음악 다큐멘터리며, 동시에 배리어프리 작업을 통해 보는 영화가 듣는 영화로 변모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배리어프리 메이킹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