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양 감독의 장편데뷔작 <미망>은 오래된 공간에 각인된 기억과 지나간 인연과 현재의 일상에 관한 아름다운 로드무비다. 팬데믹 이전 서울극장에 가던 이명화 배우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던 김태양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된 영화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망>이라는 제목이 가진 세 가지의 의미를 담은 3개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관통하며 세 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로 엮어낸다. 그림을 배우러 가던 남자는 서울극장에 가던 여자와 우연히 만나고, 한때 연인이었던 둘은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걷다가 헤어진다. 이후 여자는 서울극장의 마지막 폐관 행사를 마친 후 비가 오락가락하는 거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시간이 흘러 화가가 된 남자는 지인의 장례식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여자와 다시 조우한다. 지인의 죽음을 매개로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그들의 추억이 고여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꼭 다시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다시 헤어진다. 영화는 걷다가 멈추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반복 속에서 고였다가 흘러가는 시간과 수많은 인연이 쌓여있는 오래된 공간을 유영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유려하게 담아낸다.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어떤 정서를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게, 허전하면서도 담담하게 담아낸 이 영화가 주는 진짜 여운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