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감독의 장편데뷔작 <지난 여름>은, 말하자면 흘러가는 시간을 포착하여 한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조를 담아낸 영화다. 늦은 봄 모내기와 함께 시작된 영화는 커다란 매미 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로 가득 찬 가뭄과 장마를 지나 추수하는 가을 풍경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민우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채집하고, 마을 구석구석의 풍경을 기록한다. 농부 아빠는 변화하는 날씨에 맞춰 농사를 짓고, 면사무소에 다니던 민우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 중이다. 민우의 친구는 아버지의 축사 일을 도우며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동네 식당에서, 장례식장에서, 비닐하우스 앞에서 여러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속에서 이 모든 일은 천천히 흘러간다. 감독은 마음에 드는 공간을 정하고, 그 공간에 머무르면서 이야기를 찾아낸 다음, 인물과 카메라를 투입하여 이야기를 이미지로 담아낸다. 제작 방식이나 결과물 모두에게서 감독이 좋아하는 포르투갈의 명장 페드로 코스타의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난 여름>은 서사적으로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 자연스럽게 찾아온 할머니의 죽음에서, 이미지적으로는 해 질 무렵 어머니의 무덤까지 긴 산길을 따라 걸어가던 민우의 뒷모습과 파란 하늘 아래 노란 벼들이 가득한 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민우의 옆모습에서 미세한 감정의 파장을 포착해 낸다. 몇 줄로 요약되는 서사를 가진 장르영화들이 사랑받는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정조를 포착하는 이미지의 힘을 믿으며, 삶의 어떤 순간을 담아내려는 이 시도는 그래서 매우 소중하다.